궁창이란 무엇일까요? —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엿새의 구조

06 우물가 산책 · 창세기 1:6–25

창세기 1장에 아홉 번 나오는 ‘궁창’은 무엇인가. 히브리어 ‘라키아’의 뜻과 번역의 갈래, 본문이 궁창에 대해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 다른 책의 궁창과 고대 근동의 하늘을 살핀 뒤, 둘째 날부터 여섯째 날의 짐승까지(1:6–25) 나누시는 사흘과 채우시는 사흘의 구조를 읽는다.

창세기 1:6–25핵심 낱말 · 궁창 רָקִיעַ그림 6 · 각주 44

먹선 삽화. 맨 위에 물결로 그린 궁창 위의 물이 띠처럼 펼쳐져 있고, 그 아래 트인 하늘에 해와 초승달과 별들이 떠 있으며 새 떼가 난다. 왼쪽 뭍에는 열매 맺는 나무와 키 큰 침엽수, 염소·사자·사슴이 있고, 오른쪽 바다에는 큰 바다 생물의 등과 꼬리, 물고기들이 보인다

지난 글에서는 창세기 1:2–5를 읽었다. 2절의 땅은 하나님께 맞서는 혼돈이 아니라 아직 형태가 없고 비어 있어서 생명이 살 수 없는 땅이었으며, 하나님은 그 땅 위에서 처음으로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고 어둠을 없애지 않으신 채 빛과 나누어 ‘밤’이라 이름 붙이셨다. 이번 글은 그다음 대목, 둘째 날부터 여섯째 날의 짐승까지(1:6–25)를 읽는다.

이 대목에서 가장 낯선 낱말은 ‘궁창’이다. 개역한글 창세기 1장에서 궁창은 아홉 번 나오며(6, 7, 8, 14, 15, 17, 20절, 7절에만 세 번), 하나님이 둘째 날에 만드시는 것도, 넷째 날 광명이 놓이는 곳도 궁창이며, 다섯째 날 새에 관한 명령에도 궁창이 나온다. 그러나 이 낱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분명하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궁창을 ‘맑고 푸른 하늘’로 풀고 기독교 용어로서 ‘유대교에서 구분하는 세계의 하나’라는 뜻을 덧붙일 뿐이며, 새번역과 공동번역은 같은 낱말을 ‘창공’으로 옮겼다.1 궁창이 그저 하늘이라면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셨다는 8절은 무엇을 말하며, 궁창 위에 있다는 물은 어디에 있는가?

본문 — 창세기 1:6–25

창세기 1:6–25 · 개역한글 (개역개정이나 새번역 등 다른 번역은 저작권 문제가 있어 부득이하게 개역한글로 쓴다)

⁶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⁷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⁸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⁹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¹⁰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¹¹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¹²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¹³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세째 날이니라
¹⁴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¹⁵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¹⁶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¹⁷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¹⁸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¹⁹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네째 날이니라
²⁰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²¹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²²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²³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²⁴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²⁵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한글판』(1961).2

히브리어 본문은 분량 때문에 싣지 않고 이 글에서 자세히 살필 낱말만 정리하며, 한글 읽기는 학습용 근사 표기다.3

원문읽기개역한글기본 뜻
רָקִיעַ라키아궁창넓게 펼친 면, (단단한) 펼침
עַל־פְּנֵי알 페네(궁창)에는~의 앞(‘얼굴’에서 온 말)
מָאוֹר, מְאֹרֹת마오르, 메오로트광명빛을 내는 것, 광명체, 등불
אֹתֹת오토트징조표, 표징
מוֹעֲדִים모아딤사시정해진 때, 절기
מֶמְשָׁלָה, מָשַׁל멤샬라, 마샬주관하다다스림, 다스리다
לְמִינוֹ레미노종류대로종류
נֶפֶשׁ חַיָּה네페쉬 하야생물살아 숨 쉬는 존재
תַּנִּינִם탄니님(큰) 물고기바다 괴물
בָּרָא바라창조하다빚다, 창조하다
מִלְאוּ밀우충만하라채우라

뜻풀이는 브라운·드라이버·브릭스의 히브리어 사전(이하 BDB)을 따랐다.4

궁창이란 무엇인가

낱말과 번역

‘궁창’(穹蒼)은 높고 둥근 하늘을 뜻하는 ‘궁’(穹)과 ‘푸르다’는 뜻의 ‘창’(蒼)으로 이루어진 한자어이며, 개역한글에서 히브리어 ‘라키아’(רָקִיעַ)를 옮긴 말이다. 라키아는 ‘두드려 펴다’라는 동사 ‘라카’(רָקַע)와 뿌리가 같은데, 이 동사는 금을 두드려 얇은 판으로 만드는 일(출애굽기 39:3, “금을 얇게 쳐서”)에도, 하나님이 “땅을 물 위에 펴신” 일(시편 136:6)에도 쓰였다. BDB 역시 라키아를 ‘넓게 펼친 면, (단단한) 펼침’으로 풀고 ‘두드려 편 것처럼’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5

번역자들은 이 낱말을 저마다 다른 뜻을 지닌 말로 옮겼다. 칠십인역은 ‘단단한 것, 받침’을 뜻하는 ‘스테레오마’(στερέωμα)를, 라틴어 번역인 불가타는 ‘버팀, 받침’을 뜻하는 ‘피르마멘툼’(firmamentum)을 썼고, 영어의 ‘firmament’는 이 라틴어에서 왔다.5 그리스어와 라틴어 번역이 단단함과 버팀의 뉘앙스를 살렸다면, 우리말 ‘궁창’은 한자 뜻 그대로 높고 둥근 하늘의 모양을 강조했다. 새번역과 공동번역의 ‘창공’(蒼空)은 ‘푸르다’는 뜻의 ‘창’(蒼)과 ‘비다, 하늘’을 뜻하는 ‘공’(空)으로 이루어져 둥근 모양 없이 푸른 하늘을 가리키며,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도 궁창의 첫째 뜻풀이와 같은 ‘맑고 푸른 하늘’이다.1 번역마다 전하는 이미지가 다르므로, 궁창이 무엇인지는 번역어보다 히브리어 본문이 이것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찾아봐야 한다.

히브리어 라키아와 그 번역어를 비교한 도식. 라키아는 ‘넓게 펼친 면, (단단한) 펼침’이고 뿌리 동사 라카는 ‘두드려 펴다’이다. 칠십인역의 스테레오마는 단단함을, 불가타의 피르마멘툼은 버팀을 강조하며 영어 firmament는 라틴어에서 왔다. 우리말 궁창은 높고 둥근 푸른 하늘을, 창공은 푸른 하늘을 가리킨다
그림 1. 라키아에서 궁창까지 — 같은 낱말을 옮긴 번역어들이 각각 강조하는 의미

본문이 말하는 궁창

창세기 1장은 궁창을 상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말씀하시고(6절)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을 나누신 뒤(7절),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신다(8절). 6절의 ‘나뉘게 하리라’는 히브리어로 ‘나누는 것이 되라’(위히 마브딜, וִיהִי מַבְדִּיל)이므로, 본문이 궁창에 맡긴 일은 물과 물 사이를 나누는 것이다.6 첫째 날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신 데 이어, 둘째 날에는 하나님이 만드신 궁창이 물을 위아래로 나눈다. 8절에서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신 일은 첫째 날에 빛을 ‘낮’, 어둠을 ‘밤’이라 부르신 일(5절)과 같은 이름 붙임이다.

궁창은 넷째 날과 다섯째 날에 다시 등장하는데, 이때 본문은 광명과 새에 서로 다른 전치사를 쓴다. 광명은 ‘하늘의 궁창 안에’(비르키아 하샤마임, בִּרְקִיעַ הַשָּׁמַיִם) 있으라는 말씀대로 그 안에 놓인다(14, 15, 17절). 반면 20절의 “땅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는 히브리어로 ‘땅 위로, 하늘의 궁창 앞으로’(알 페네 레키아 하샤마임, עַל־פְּנֵי רְקִיעַ הַשָּׁמָיִם)이며, ‘앞’으로 옮긴 ‘페네’는 ‘얼굴’을 뜻하는 낱말이다. BDB는 새가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 하늘의 궁창 앞, 곧 궁창과 땅 사이를 난다고 푼다.6 우리말 번역에서는 새번역이 “하늘 창공으로”, 공동번역은 “하늘 창공 아래에는”으로 옮겼다.1 광명은 궁창 안에, 새는 궁창 앞에 있다는 본문의 구별과 BDB의 풀이를 따르면, 궁창은 광명이 그 안에 놓이는 하늘이면서 땅에서 올려다볼 때 새가 그 앞을 나는 하늘이다.

본문이 말하지 않는 것도 있다. 창세기 1장에서는 궁창이 무엇으로 되었는지, 어떤 모양인지 서술하지 않는다. 지난 글에서 소개한 구약학자 데이비드 M. 카(David M. Carr)는 위의 물과 아래의 물을 나누는 궁창을 ‘하늘의 판’, ‘지붕’이라 부르고, 이 모티프가 바빌로니아의 창조 서사시 『에누마 엘리시』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러나 그 서사시에서 하늘의 지붕은 마르두크가 티아마트의 사체를 갈라 만든 것인 데 비해, 창세기에는 그 지붕이 무엇으로 되었는지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7 창세기의 궁창은 하나님의 말씀(6절)과 만드심(7절)으로 생기고, 하나님이 그 이름을 붙이신다. 본문은 궁창을 재질이나 모양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과 궁창이 하는 일로 설명한다.

창세기 1:6–20이 궁창에 대해 말하는 것을 단면으로 그린 도식. 맨 위에 궁창 위의 물, 그 아래 금빛 범위의 궁창(하늘)에 광명들과 그 앞을 나는 새, 맨 아래에 드러난 뭍(땅)과 모인 물(바다)이 있다. 궁창의 위쪽 경계는 점선, 아래쪽은 흐리게 그렸다
그림 2. 본문이 말하는 궁창 — 창세기 1:6–20에 나오는 것을 그렸다. 궁창의 범위는 왼쪽 금빛 괄호와 엷은 금빛으로 나타냈으며, 이 범위 표시는 이 글의 해석이다. 궁창의 재질과 모양은 본문에 나오지 않으므로 위쪽 경계는 점선으로, 아래쪽은 흐리게 그렸고, 궁창 위의 물도 무엇인지 해석이 나뉘므로 물결 없이 그렸다.

다른 책의 궁창

창세기 1장 외에도 라키아를 궁창으로 번역한 대목이 있다. 시편 19:1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라고 노래하여 궁창을 하늘과 나란히 놓고, 시편 150:1은 “그 권능의 궁창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 하며, 다니엘 12:3은 지혜 있는 자가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나리라 한다.8 이 구절들에서 궁창은 하늘을 달리 이르는 말로 쓰인다.

하지만 에스겔 1장의 궁창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에스겔이 본 환상에서 생물들의 머리 위에는 “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이 펴 있어 보기에 심히 두려우며”(22절),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다(26절). BDB의 라키아 항목은 22절에서 개역한글이 ‘수정’으로 옮긴 말(케라흐, קֶרַח)을 얼음으로 보아 에스겔 1장의 라키아를 얼음 같은 평평한 면, 곧 하나님 보좌의 받침으로 풀어낸다. BDB는 에스겔 1장의 라키아를 뜻 1 ‘(평평한) 펼침’, 곧 받침으로 먼저 풀고, 코르닐(Cornill)의 에스겔 주석을 따라 여기서 창세기 1장의 뜻 2 ‘하늘의 궁륭(穹窿)’이 나왔다고 본다. 다만 같은 사전의 케라흐 항목은 이 구절을 ‘아마도’ 얼음으로 보면서, 대부분은 칠십인역을 따라 ‘수정’으로 읽는다고 적는다.8

덧붙여 욥기 37:18의 “부은 거울 같은 견고한 궁창”은 따로 살필 필요가 있다. 개역한글은 여기서도 ‘궁창’이라 썼지만 히브리어 낱말은 라키아가 아니라 ‘구름’ 또는 ‘하늘’을 뜻하는 ‘셰하킴’(שְׁחָקִים)이고, 라키아와 뿌리가 같은 동사 라카가 그 앞에 ‘펴다’(타르키아, תַּרְקִיעַ)로 쓰였다. 37:21의 “궁창의 광명”에서 궁창으로 옮긴 말도 같은 셰하킴이다.8 BDB가 라키아를 ‘두드려 편 것처럼’으로 풀면서 견주라고 한 곳도 이 구절이다.5 반면 창세기 1장에는 궁창이 견고하다는 말이 없다.

궁창 위의 물

궁창 위의 물에 대한 해석은 크게 엇갈린다. 먼저 궁창을 그 위의 물을 받치는 단단한 덮개로 보는 견해다. BDB는 ‘라키아’를 ‘(단단한) 펼침’으로 풀이하는데, 히브리 사람들이 궁창을 위의 물을 받치는 단단한 것으로 여겼다는 설명을 덧붙인다.4 카가 『에누마 엘리시』에서 온 모티프로 보는 ‘하늘의 판’과 ‘지붕’도 같은 그림이다.7 다른 해석으로는 땅에서 보이는 하늘의 모습으로 궁창을 정의하는 것이 있다. 종교개혁자 칼뱅은 이 낱말의 문자적 의미를 ‘펼쳐진 것’으로 이해하고, 모세가 여기서 눈에 보이는 세계의 모습만 다룬다고 보면서 위의 물을 구름으로 해석했다. “천문학과 다른 깊은 학문을 배우려는 사람은 다른 데로 가라”는 그의 말도 같은 맥락에 있다.9 지난 글에서 소개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번 포이트레스(Vern S. Poythress)도 궁창 위의 물을 하늘 바다가 아닌 구름 속의 빗물로 보며 1:6–8을 현상적 서술(phenomenal description)로 읽는다.10 4세기의 바실레이오스(Βασίλειος)는 궁창을 물을 붙들 수 있는 견고한 것으로 이해하면서도 그것이 “실제로 무게와 저항을 지닌 견고하고 단단한 실체는 아니”라는 단서를 붙여, 독자적 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11

최소한 성서 본문은 어떤 해석이 옳은지 판단할 근거를 주지 않는다. 다만 위의 해석들이 공유하는 본문의 진술은 분명하다. 궁창 위의 물 역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뉜 물이다. 시편 148편은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찬양할찌어다”(4절)라고 노래하고, 그 까닭을 “저가 명하시매 지음을 받았음이로다”(5절)라고 밝힌다.12 궁창 위의 물이 무엇이든, 시편은 그것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지음을 받아 찬양하라는 부름을 받는 피조물로 노래한다.

고대 근동의 하늘과 창세기의 궁창

카가 창세기 하늘의 판의 출처로 꼽는 바빌로니아 창조 서사시 『에누마 엘리시』(Enūma eliš, 서사시의 첫 두 낱말로 ‘높은 곳에서 …했을 때’라는 뜻이다)는 하늘이 생기는 장면을 이렇게 전한다. 마르두크는 태초의 바다 티아마트를 죽인 뒤 그 몸을 “납작한 물고기처럼” 둘로 나누어 절반으로 하늘의 덮개를 세우고, 빗장을 걸고 파수꾼을 세워 그 물이 나오지 못하게 한다(4토판 137–140행). 이어 하늘로 지은 처소 에샤라(E-šara)에 아누와 벨과 에아가 저마다의 구역에 살게 한다(4토판 144–146행).13 물을 위아래로 나누는 하늘은 창세기 1:6–8과 같은 구성이지만, 하늘을 누가 무엇으로 짓고 그 하늘에 누가 사는지를 항목별로 나란히 놓으면 두 본문은 거의 모든 항목에서 다르다(그림 3).

『에누마 엘리시』 4·5토판과 창세기 1장 둘째·넷째 날을 하늘을 만드는 이, 하늘의 재료, 위의 물, 하늘의 이름과 쓰임, 별, 때, 달의 일곱 항목으로 나란히 비교한 표 형식의 도식. 궁창에 관한 창세기 쪽 네 줄에 금빛 줄이 있다
그림 3. 『에누마 엘리시』와 창세기 1장의 하늘 — 하늘에 관한 일곱 항목을 나란히 놓았다. 금빛 줄은 궁창에 관한 서술이다.

『에누마 엘리시』의 하늘에는 바빌로니아의 천문이 들어 있다. 5토판에서 마르두크는 큰 신들의 처소를 만들고 그 형상인 별들을 황도의 별자리로 세우며, 한 해를 정하여 마디로 나누고 열두 달마다 별 셋을 정한다(1–4행). 달의 신에게는 빛을 내게 하여 밤을 맡기고 날을 정하게 한다(12–13행).14 이 서사시에서 하늘의 천체는 신이거나 신의 형상이다. 시파르의 태양 신전에서 나온 기원전 9세기의 샤마시 석판(그림 4)에도 해의 신 샤마시 위에 달 원반과 해 원반과 여덟 꼭지 별이 새겨져 있으며, 세 상징 위에 새긴 글은 그 셋이 달의 신 신(Sin)과 해의 신 샤마시(Šamaš)와 별의 여신 이슈타르(Ištar)임을 밝힌다.15 창세기 1:14–18의 광명도 낮과 밤을 나누고 때를 이루지만, 넷째 날의 서술은 이 광명에 신의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카는 14절의 ‘징조’를 마르두크가 별을 천체 점복의 징조로 둔 『에누마 엘리시』의 대목(카의 행 표기로 5토판 23–24행)이 희미하게 남은 흔적으로 보고, 창세기는 곧 이 모티프를 버리고 해와 달이 낮과 밤을 구별하는 일에 서술을 모은다고 해석한다.16

샤마시 석판 부조의 흑백 도판. 오른쪽 신전 안에 해의 신 샤마시가 앉아 있고 그 위에 달 원반, 해 원반, 여덟 꼭지 별 상징이 새겨져 있다. 왼쪽에서는 세 인물이 큰 해 원반을 올린 제단 앞으로 나아오고, 아래에는 물결무늬 띠가 있다
그림 4. 샤마시 석판의 부조(기원전 9세기, 시파르 출토, 영국박물관 91000) — 오른쪽 신전 안에 해의 신 샤마시가 앉아 있고, 그 위에 달 원반과 해 원반과 여덟 꼭지 별이 있다. 신전 아래의 물결을 King(1912)은 하늘의 바다로 설명한다. 도판: L. W. King, Babylonian Boundary-Stones and Memorial-Tablets in the British Museum(1912), 도판 XCVIII. 퍼블릭 도메인.

창세기 1장이 고대 근동의 문화권에서 쓰였으므로 그곳에 흔하던 낡고 잘못된 우주관을 담고 있다는 견해가 있다. 이 견해에서는 1:6–8의 궁창과 그 위의 물도 단단한 하늘 돔과 그 돔이 가둔 하늘 바다를 가리키며, 이런 해석은 구약학 문헌에 널리 퍼졌고 BDB의 라키아 뜻풀이에도 들어갔다.17 미국의 구약학자 조지 L. 로빈슨(George L. Robinson)이 1906년에 펴낸 『이스라엘의 지도자들』(Leaders of Israel)에 실린 「고대 히브리인의 우주관」(그림 5)은 이 견해가 1:6–8에서 읽어 내는 단단한 궁창과 그 위의 물을 그림으로 옮긴 근대의 재구성도다. 부제대로 창조와 홍수 이야기를 설명하려고 그린 그림이어서, 홍수 기사(창세기 7:11)의 ‘하늘의 창들’과 스올, 라합, 리워야단처럼 창세기 1장 밖의 구절에서 가져온 요소가 한 그림에 모여 있다. 포이트레스는 『에누마 엘리시』의 이 장면부터가 물리적 구조의 서술이 아니라 은유이거나 상징이라는 점을 들어 이 견해를 반박한다. 서사시 안에서 티아마트는 다리와 입과 배를 지닌 몸으로도, 가두어야 할 물로도 그려지고, 마르두크가 건 ‘빗장’(parku)은 빗장일 뿐 돔이 아니다. 같은 행을 “가죽을 폈다”로 옮긴 번역(Foster)도 있으나, 포이트레스는 그 번역에 근거 설명이 없고 바탕 낱말 parku는 ‘빗장’을 뜻한다고 지적한다.17

1906년 로빈슨의 책에 실린 「고대 히브리인의 우주관」 그림. 땅 위에 반원형 궁창(firmament)이 서 있고, 그 위에 위의 물과 하늘의 창들, 맨 위에 하나님이 있다. 궁창 안쪽에는 해와 달과 별과 구름이, 땅 아래에는 스올과 큰 깊음의 물이 그려진 근대의 재구성도
그림 5. 「고대 히브리인의 우주관」(The Ancient Hebrew Conception of the Universe) — 조지 L. 로빈슨, 『이스라엘의 지도자들』(뉴욕, 1906), 2쪽. 로빈슨은 서문에서 이 그림의 도안(plan)을 제자 루이스 개스턴 리어리(Lewis Gaston Leary)에게 빚졌다고 밝힌다. 고대의 유물이 아닌 20세기 초의 재구성도이며, 부제는 “창조와 홍수 이야기를 설명하기 위하여”다. 1906년 미국 출판물로 퍼블릭 도메인.

창세기 1장은 물을 위아래로 나누는 하늘과 그 하늘에서 때를 정하는 천체처럼 고대 근동의 독자에게 익숙한 구성 요소를 쓴다. 『에누마 엘리시』에서 티아마트의 주검으로 지은 하늘은 마르두크가 적을 무찌른 일과 창조의 시작을 함께 나타내지만, 창세기에는 그 이야기가 없다. 카가 창세기의 하늘의 판을 『에누마 엘리시』에서 왔을 가능성이 큰 ‘맹목 모티프’(blind motif), 곧 원래 이야기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남은 모티프로 보는 까닭이다.7 에샤라처럼 신들이 사는 처소도 창세기 1장의 하늘에는 나오지 않는다.

궁창으로 본 엿새의 구조

날마다 되풀이되는 형식

창세기 1장에서는 매일 같은 형식이 되풀이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개역개정 ‘이르시되’)로 명령하시고, “그대로 되니라”로 그 명령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그 일을 행하시고(‘만드사’, ‘창조하시니’), 이름을 붙이시고,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로 평가하시고,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로 그날이 끝난다.18 히브리어 본문에서 하나님의 창조 명령은 매일 반복되고, 셋째 날과 여섯째 날에는 두 차례 명령을 하시니, 총 여덟 차례의 명령이 나온다(3, 6, 9, 11, 14, 20, 24, 26절). 다만 구체적인 순서는 날마다 똑같지는 않아서, ‘그대로 되니라’ 같은 경우 첫째 날에는 이 말 대신 “빛이 있었고”가 오고, 둘째 날에는 만드신 뒤에 나오며, 다섯째 날에는 나오지 않는다.19

반복되는 형식 속에서도 날마다 조금씩은 차이가 있다. 눈에 띄는 차이는 세 가지다. 먼저 이름을 붙이시는 일은 처음 사흘에만 나온다. 하나님은 빛에 ‘낮’, 어둠에 ‘밤’이라는 이름을 붙이시고(5절) 궁창에 ‘하늘’(8절), 뭍과 모인 물에 ‘땅’과 ‘바다’라는 이름을 붙이시지만(10절), 넷째 날부터는 이름을 붙이시는 말씀이 없다. 다음으로 복은 다섯째 날에 처음 나온다. 하나님은 물의 생물과 새에게 복을 주시지만(22절), 여섯째 날의 짐승에게는 복을 주시는 말씀이 없다. 끝으로 ‘종류대로’라는 말은 셋째 날부터 나와 채소와 나무(11–12절), 물의 생물과 새(21절), 땅의 생물, 곧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24–25절)에 모두 열 번 쓰였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의 분포도 고르지 않은데, 히브리어 본문에서 이 말이 없는 날이 바로 궁창을 만드신 둘째 날이다. 이 말은 셋째 날(10, 12절)과 여섯째 날(25, 31절)에는 두 번씩 나오며, 이 불균형은 일찍부터 해석의 대상이었다. 11세기 유대 주석가 라쉬(Rashi)는 물에 관한 일이 둘째 날에 시작되어 셋째 날에야 끝났다고 보고, 끝나지 않은 일은 아직 온전하지 않으므로 물의 일을 마친 셋째 날에 ‘좋았더라’가 두 번 나온다고 풀이했다.20 칼뱅 역시 땅의 물이 정해진 곳에 모이기 전까지는 그 일에서 얻는 유익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라 추정했는데, 이 설명 앞에는 ‘아마도’가 붙어 있다.9 13세기의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라쉬와 같은 설명을 포함한 세 가지 이유를 들면서 그 출처를 ‘랍비 모세’, 곧 중세 유대 철학자 마이모니데스로 밝혔다.21 이 해석들에서 둘째 날의 일은 셋째 날에 이르러 완성되거나(라쉬, 그리고 아퀴나스가 든 첫째 이유) 그 유익이 드러난다(칼뱅). 다만 고대 그리스어 번역인 칠십인역에는 둘째 날 끝(1:8)에도 ‘좋았더라’에 해당하는 구절(καὶ ἴδεν ὁ θεὸς ὅτι καλόν)이 들어 있어,22 칠십인역으로 성경을 읽은 바실레이오스는 둘째 날 강해에서도 이 구절을 풀이한다.11

나누시는 사흘과 채우시는 사흘

이름과 복이 나오는 날의 차이는 1:2의 땅이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다는 두 가지 ‘아직’과 연결해 볼 때 비로소 뜻이 분명해진다. 지난 글에서는 1:2의 ‘토후 와보후’(תֹהוּ וָבֹהוּ)를 ‘형태 없음’과 ‘비어 있음’, 곧 아직 형태가 갖추어지지 않고 비어 있어서 생명이 살 수 없는 땅의 상태로 읽었다. 창세기 1장의 나머지는 이 두 가지 ‘아직’에 응답하듯 전개된다.

처음 사흘의 일은 구획과 명명(命名)이다. 하나님은 첫째 날에 빛과 어둠을, 둘째 날에 궁창 아래의 물과 위의 물을 나누시고, 셋째 날에는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게 하신다. 창세기 1장에서 ‘나누다’(바달, בָּדַל)는 첫째·둘째 날과 넷째 날에 쓰였으므로 셋째 날의 경계는 동사 ‘나누다’ 없이 물이 한곳으로 모이는 일로 생기며, ‘이름을 붙이다’(카라, קָרָא)는 처음 사흘에만 쓰였다. 이 사흘 동안 형태 없던 땅에 경계가 생기고 경계마다 이름이 붙으며, 셋째 날에는 땅에서 풀과 나무도 돋는다.

다음 사흘의 일은 그렇게 생긴 경계 안을 채우는 것이다. 넷째 날에는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다섯째 날에는 물에 생물이, 하늘의 궁창 앞에 새가, 여섯째 날에는 땅에 짐승이 창조되며, 전후반 사흘을 나란히 놓으면 다음과 같다.

나누시는 사흘채우시는 사흘
첫째 날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낮과 밤이라 부르심(3–5절)
넷째 날낮과 밤을 주관할 광명들(14–19절)
둘째 날궁창을 만들어 아래의 물과 위의 물을 나누시고 하늘이라 부르심(6–8절)
다섯째 날물의 생물과 하늘의 새(20–23절)
셋째 날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게 하시고 땅과 바다라 부르심, 땅에 풀과 나무가 돋음(9–13절)
여섯째 날땅의 짐승(24–25절), 그리고 사람(26–31절, 다음 글)

첫째 날과 넷째 날의 대응, 그리고 채움이라는 주제는 본문의 낱말에서 확인된다. 넷째 날 18절의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는 첫째 날 4절의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와 히브리어로 같은 구절(בֵּין הָאוֹר וּבֵין הַחֹשֶׁךְ, 빛과 어둠 사이를)을 쓰며, 첫째 날 하나님이 하신 나누는 일을 넷째 날에는 광명이 맡는다. 다섯째 날 하나님이 물의 생물에게 주신 복 “충만하라”(22절)는 히브리어로 ‘채우라’(밀우, מִלְאוּ)이므로, 1:2의 ‘비어 있음’에 대한 응답은 다섯째 날에 처음으로 ‘채우라’는 명령의 형태로 나타난다.

엿새를 위아래 두 줄로 놓은 도식. 위 줄은 나누시는 사흘(첫째 날 빛과 어둠, 둘째 날 궁창으로 물과 물을 나누심, 셋째 날 뭍과 바다, 풀과 나무), 아래 줄은 채우시는 사흘(넷째 날 광명들, 다섯째 날 물의 생물과 새, 여섯째 날 땅의 짐승)이다. 세로 화살표는 위아래 날의 대응을, 비스듬한 화살표는 넷째 날의 광명이 둘째 날의 궁창에, 다섯째 날의 물의 생물이 셋째 날의 바다에 놓이는 것을 가리킨다. 둘째 날과 궁창에 관한 화살표는 금빛이다
그림 6. 엿새간 창세의 구조 — 금빛은 궁창이다.

엿새간의 창조와 피조물: 대응과 진행

이 구조에서 궁창은 두 묶음에 모두 걸쳐 있는 낱말이다. 궁창은 나누시는 사흘의 둘째 날에 만들어지지만 채우시는 사흘의 넷째 날과 다섯째 날에 다시 나온다. 넷째 날의 광명은 ‘하늘의 궁창’에 놓이고(14, 15, 17절), 다섯째 날의 새는 ‘하늘의 궁창’ 앞을 난다(20절). 다섯째 날의 물고기가 채우는 곳은 셋째 날에 모인 ‘바다’다(22절). 표에서 넷째 날에 대응하는 날은 첫째 날이고 다섯째 날에 대응하는 날은 둘째 날이지만, 본문에서 넷째 날은 둘째 날과, 다섯째 날은 셋째 날과도 이어져 있다. 날과 날의 대응은 표처럼 정연하지 않으며, 그 어긋남은 궁창과 바다에서 드러난다.

해석자들은 이 대응과 어긋남을 서로 다르게 읽었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늘과 땅을 아직 형태 없이 창조하신 일, 그 하늘과 땅을 나누어 완성하신 일, 하늘과 땅을 꾸미신 일의 셋으로 구분하고, 모세가 넷째 날에 ‘광명들’과 ‘빛’을, 다섯째 날에 ‘물’과 ‘하늘의 궁창’을 언급한 것을 각각 첫째 날과 둘째 날에 대응함을 보이려는 것이라 풀이했다. 그의 구도에서 다섯째 날을 둘째 날에 잇는 표지는 물과 하늘의 궁창이다.24 미국의 구약학자 메리디스 클라인(Meredith G. Kline)은 전후반 사흘을 각각 “창조의 왕국들”과 그 위를 다스리도록 맡겨진 “피조물 왕들”을 다루는 두 묶음으로 보고, 바다를 하늘과 함께 둘째 날의 ‘왕국 영역’으로 놓아 다섯째 날의 새와 물고기가 생육하고 번성하여 채움으로써 그 하늘과 바다를 다스린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는 이 구도를 편 논문에서 바다가 셋째 날에야 모인다는 어긋남을 따로 다루지 않는다.25 반면 엿새를 순서대로 이어지는 날로 읽는 구약학자 에드워드 J. 영(Edward J. Young)은 1962년 『웨스트민스터 신학 저널』(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에 실은 「창세기의 날들」(The Days of Genesis)에서, 넷째 날의 광명이 둘째 날에 생긴 궁창에 놓이고 물고기가 셋째 날에야 생긴 바다를 헤엄친다는 점을 근거로 두 묶음의 날이 날마다 “진정한 대응”을 이룬다고 볼 수 없음을 지적했다. 영은 “어느 정도의 대응은 부정할 수 없다”고 인정했으나 그 대응은 첫째 날의 빛과 넷째 날의 광명이 서로 관계가 있다는 정도에 그쳤고, 셋째 날과 여섯째 날의 대응도 기껏해야 셋째 날의 일부에만 해당한다고 보았으며, 둘째 날과 다섯째 날의 대응은 ‘착각’으로 판정했다.26 포이트레스는 같은 관찰에서 궁창이 있어야 광명이 그 안에 있을 수 있고 바다가 있어야 물고기가 그 안에 있을 수 있다는 진행을 근거로, 날의 순서를 순전히 문학적 장치로만 보는 ‘순수한’ 틀 해석을 비판한다.27

클라인과 영, 포이트레스는 엿새가 실제로 시간 순서대로 일어났는지를 두고도 엇갈린다. 클라인은 넷째 날의 서술이 시간상 첫째 날로 되돌아간다고 보아 서술의 순서가 사건의 순서와 같지 않다고 했고,25 영은 궁창과 바다가 먼저 있어야 광명과 물고기가 그 안에 놓일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날의 순서를 있는 그대로 보려 했으며,26 포이트레스도 사건이 대체로 시간 순서를 따른다고 판단했다.27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필자는 대응 관계만으로 온전한 해석은 어렵다고 보며, 엿새 간의 창조 서술이 대응을 이루면서 앞으로도 나아간다고 본다. 첫째 날과 넷째 날, 둘째 날과 다섯째 날, 셋째 날과 여섯째 날이 서로 대응하는 동시에, 궁창과 바다처럼 앞서 마련된 것 위에 다음 피조물이 놓인다.

셋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셋째 날 — 바다와 땅, 그리고 풀과 나무

둘째 날에 궁창으로 물이 위아래로 나뉜 뒤, 셋째 날(9–13절)에는 두 가지 일이 있다. 먼저 하늘 아래의 물(9절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며, 하나님은 뭍을 ‘땅’, 모인 물을 ‘바다’라 이름 붙이신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이름을 붙이시는 마지막 장면이다. 이어 하나님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11절)고 명하신다.

땅을 향한 이 명령의 형식은 여섯째 날 짐승에 대한 명령(24절)에서도 반복된다. 바실레이오스의 해석에서 이 명령은 땅에 “자연적이고 영구한 법”과 같이 작용해 “앞으로 올 모든 시대를 위한” 결실의 힘을 부여하며, 처음 한 번 돌려진 팽이가 중심에 선 채 계속 돌듯이 자연도 첫 명령의 힘을 받아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시대를 따라 이어진다.28 칼뱅의 해석에서는 땅이 열매를 내도록 정해져 있었더라도 하나님의 입에서 새 힘이 나오기 전에는 메마르고 비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29 두 사람은 풀과 나무가 해보다 하루 먼저 창조된 순서에도 뜻을 두었다. 바실레이오스는 그 까닭을 해를 생명의 근원으로 섬기는 사람들이 그 잘못을 버리게 하려는 데서 찾았고,28 칼뱅은 그 순서가 “우연이 아니었다”고 하면서 우리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돌리게 하려는 것으로 해석했다.29 셋째 날에 처음 나오는 ‘종류대로’(레미노, לְמִינוֹ)는 11–12절에서 씨와 열매를 통해 생명이 대를 잇는 질서를 가리키며, 바실레이오스의 표현으로는 “갈대에서 갈대가 자라며, 한 종류의 씨에서는 언제나 같은 종류의 식물이 돋는” 질서다.28

넷째 날 — 하늘의 궁창에 놓인 광명

넷째 날(14–19절)에는 광명을 창조하시는 한 가지 일에 다섯 절(14–18절)이 할애되었는데, 카는 이 대목을 “유난히 긴 보도”라 칭한다.30 본문에서 광명이 맡는 일은 네 가지로, 낮과 밤을 나누고 빛과 어둠을 나누며(14, 18절),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이루고(14절), 땅을 비추고(15, 17절), 낮과 밤을 주관하는 것이다(16, 18절). 이 일을 맡은 광명은 ‘해’(셰메쉬, שֶׁמֶשׁ)와 ‘달’(야레아흐, יָרֵחַ)이라는 이름 없이 ‘큰 광명’과 ‘작은 광명’으로만 불리며, 이는 처음 사흘 동안 하나님이 낮과 밤, 하늘, 땅과 바다에 이름을 붙이신 것과 대조된다. 구약학자 게르하르트 하젤(Gerhard F. Hasel)은 이 대목에서 고대 근동의 천체 숭배에 맞서는 의도를 읽어 낸다. 그의 해석에서 ‘해’와 ‘달’을 가리키는 공통 셈어 낱말은 동시에 신의 이름이기도 했으므로 창세기 1장에서는 그 이름이 쓰이지 않았고, 해와 달은 빛을 비추며 섬기는 ‘광명’의 격하된 지위에 놓인다. 16절 끝의 별은 히브리어로 “그리고 별들을”(웨에트 하코하빔, וְאֵת הַכּוֹכָבִים) 두 낱말에 불과한데, 하젤은 삽입구로 보이는 이 짧은 구절에서 별 역시 피조물일 뿐임을 강조하는 의도를 읽는다.31 개역한글은 이 구절을 “또 별들을 만드시고”로 옮기되 ‘만드시고’를 작은 글자로 넣어 번역자가 보탠 말임을 표시했다.2

해와 달이 넷째 날에 창조된다면 첫째 날의 빛은 무엇이었는가? 이 물음에 대한 해석자들의 답은 하나로 수렴하지 않는다. 바실레이오스는 창세기 강해 『헥사에메론』(Ἑξαήμερον, ‘엿새’)의 여섯 번째 강해에서 빛과 빛을 실어 나르는 것을 구별해, 첫째 날에는 빛의 본성 자체가 생겨났고 넷째 날에는 그 처음 빛을 실어 나를 몸으로 해가 창조되었다고 답하며 이 구별을 “등잔은 불이 아니다”라는 말로 나타낸다.32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 11권 7장에서 첫 사흘이 지나는 동안 해가 없었다며, 그 빛이 어떤 빛이었는지는 “우리 감각이 닿지 않는” 일이라 기술한다. 그 빛이 물질의 빛이었을 수도 있고, 거룩한 천사들과 복된 영들로 이루어진 거룩한 도성을 가리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33 라쉬는 탈무드의 전승을 따라 첫째 날의 빛을 하나님이 의인들을 위해 따로 감추어 두신 처음 빛으로 보고, 광명은 첫째 날에 이미 창조되었다가 넷째 날 하나님의 명령으로 궁창에 걸렸을 뿐이라고 해석한다.34 아퀴나스는 두 해석의 길을 모두 열어 두어, 위(僞)디오니시우스를 따라 첫째 날의 빛을 “아직 형태를 갖추지 않은 해의 빛”으로 보면서도,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영적인 빛으로 보아도 아무 어려움이 없다고 덧붙인다.35 위디오니시우스는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의 그리스도교 저자이며, 사도행전 17:34에서 바울의 전도로 믿게 된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의 이름으로 글을 썼기 때문에 이름 앞에 ‘거짓’을 뜻하는 ‘위’(僞)가 붙는다.36 칼뱅에 따르면 하나님은 빛을 해와 달보다 먼저 창조하심으로써 해와 달 없이도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빛을 손에 쥐고 계심을 증언하신다. 넷째 날의 광명은 이미 창조된 빛을 번갈아 땅에 퍼뜨리도록 하나님이 정하신 도구다.37 현대 학자 가운데 클라인은 첫째 날의 빛을 일으키고 다스리는 것은 바로 넷째 날의 광명이라 주장한다.25 반면 포이트레스는 두 날을 하나의 사건으로 통합해 보는 이 해석에 반대하여 해의 원반이 지평선 위로 떠오르기 전의 새벽빛처럼 빛을 내는 천체가 보이지 않아도 퍼진 빛은 있을 수 있음을 일상의 유비로 제시한다.27

이처럼 해석은 다르지만 성서 본문의 순서는 분명하다. 빛은 “빛이 있으라”는 말씀으로 생겨났다. 그 뒤 넷째 날에 이르러 해와 달이 창조되었다. 바실레이오스는 14절의 날들(days)을 해석하면서 광명이 날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날을 통치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보고, 그 근거를 “낮과 밤은 광명이 창조되기 전부터 있었다”는 데서 찾는다.32 해와 달을 신으로 섬기던 고대 근동의 세계에서 이 순서는 해의 지위와 직결된다. 해는 넷째 날에야 땅을 비추고 낮을 주관하도록 하나님이 하늘의 궁창에 두신 광명으로 등장한다(17–18절). 바실레이오스도 해와 달이 넷째 날에 창조된 까닭을,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이 해를 “빛의 근원이자 아버지”나 땅에서 자라는 모든 것을 만든 이로 여기지 않게 하려는 데서 찾았다.32

14절에서 하나님이 광명으로 이루게 하신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 가운데 ‘사시’로 옮긴 ‘모아딤’(מוֹעֲדִים)은 시편 104:19 “여호와께서 달로 절기를 정하심이여”에서 ‘절기’로 옮긴 낱말과 같다.12 BDB에도 1:14의 모아딤이 달의 모습으로 정하는 거룩한 절기를 가리킬 가능성이 크다는 풀이와 함께 이를 계절로 보는 사전과 주석도 많다는 단서가 적혀 있으며,4 라쉬 역시 이 낱말을 장차 이스라엘이 받을 절기로 해석했다.34 광명은 예배와 생활의 때를 헤아리는 기준이 된다. ‘징조’(오토트)는 별점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쓰이기도 했으나, 바실레이오스는 성경의 이 말을 빌미로 사람의 운명이 천체의 움직임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길게 반박했다. 악이 별의 본성에 들어 있다면 그 별의 창조주가 악의 장본인이 되고, 모든 것이 필연과 운명에 매여 있다면 의로운 심판의 첫 조건인 공로도 성립할 수 없다는 논리다.32 성경에도 같은 경계가 있어, 예레미야 10:2에는 “열방인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거니와 너희는 그것을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신명기 4:19에는 해와 달과 별을 보고 미혹되어 그것에 경배하지 말라는 경고가 있다.12

16절과 18절에서 광명에게 맡겨진 일은 낮과 밤을 ‘주관하는’ 것이다(멤샬라, מֶמְשָׁלָה; 마샬, מָשַׁל). BDB에는 이 두 절의 용례가 ‘천체의 다스림’으로 따로 풀이되어 있고,4 칼뱅은 이 다스림을 해가 여전히 종이고 달은 시녀인 다스림으로 규정한다.37 여섯째 날 하나님이 사람에게 맡기시는 “다스리게”, “다스리라”(1:26, 28)는 히브리어로 다른 동사(라다, רָדָה)이며, 두 다스림의 차이는 다음 글에서 살핀다.

다섯째 날 — 바다를 채우고 궁창 앞을 나는 생물

다섯째 날(20–23절)에 하나님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고 명하시며, 이 대목에서 ‘생물’(네페쉬 하야, נֶפֶשׁ חַיָּה)이 창세기 1장에 처음 나온다. 바실레이오스는 이 대목을 두고 “이제 처음으로 생명과 감각을 지닌 존재가 창조된다”고 했다.38 셋째 날에 모인 바다는 다섯째 날에 이르러 비로소 생물로 채워지고, 새는 넷째 날 광명이 놓인 그 하늘의 궁창 앞을 난다.

21절에서는 1:1 이후 처음으로 ‘창조하다’(바라, בָּרָא)가 다시 쓰이며, 그 목적어 가운데 하나가 ‘큰 물고기’(하탄니님 학게돌림)의 ‘탄니님’(תַּנִּינִם)이다. 지난 글에서 살폈듯이 이 낱말은 시편 74:13 “물 가운데 용들의 머리를 깨뜨리셨으며”에서 ‘용들’로 옮긴 바로 그 말이지만, 창세기 1장에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물의 하나다.39 하젤의 표현으로 21절의 탄니님은 “물속의 피조물일 뿐”이다.31 바실레이오스의 해석에서 이 생물이 ‘크다’고 일컬어진 것은 몸집이 큰 산과 같기 때문이며, 그것은 사람에게 두려움과 경외를 일으키도록 창조되었다.38

하나님은 다섯째 날의 생물에게 처음으로 복을 주신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22절). 칼뱅의 해석에서 이 복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피조물에게 생식력을 불어넣으시는 일이다.40

여섯째 날의 절반 — 땅의 짐승

여섯째 날(24–25절)에는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라는 명령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 만드시니”라는 서술이 나란히 놓여, 땅이 생물을 내는 일과 하나님이 친히 창조하시는 일이 함께 나타난다. 칼뱅은 죽은 원소에서 생명이 나온 것을 두고 하나님이 땅에서 나오라고 명하신 것들을 무로부터 창조하기 시작하신 것만큼 큰 기적이라 했고,41 바실레이오스 역시 짐승의 혼이 땅속에 숨어 있다가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으로 생겨났음을 강조했다.42 땅의 생물은 육축(베헤마, בְּהֵמָה), 기는 것(레메스, רֶמֶשׂ), 땅의 짐승(하이토 에레츠, חַיְתוֹ־אֶרֶץ)의 세 무리로 나뉘며, 아퀴나스의 해석에서 육축은 사람에게 쓸모 있는 가축을, 짐승은 곰이나 사자 같은 들짐승을 가리킨다.43

다섯째 날과 달리 여섯째 날의 짐승에게는 복을 주시는 말씀이 없다. 이 공백에 대해 칼뱅은 다섯째 날 물고기와 새에게 주신 복이 짐승에게도 함축되어 있다고 해석했고 아퀴나스도 그 복을 땅의 짐승에게 해당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4143 라쉬는 짐승에게도 복이 필요했으나 장차 저주받을 뱀이 복에 들지 않도록 짐승에게는 복을 주지 않으셨다는 설명을 남겼다.44 여섯째 날의 복은 1:28에서 사람에게 주어지고, 셋째 날 땅에 돋은 풀과 나무도 여섯째 날 끝에 먹을거리로 주어진다. 씨 맺는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는 사람에게, 푸른 풀은 땅의 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에 기는 것에게 주어진다(1:29–30). 셋째 날과 여섯째 날의 대응은 다음 글에서 읽을 1:26–31에서 마저 채워진다.

나누시고 채우시는 엿새

이 글은 창세기 1장에서 가장 낯선 낱말인 궁창에서 출발했다. 본문은 궁창이 무엇으로 되었는지, 어떤 모양인지 말하지 않는다. 본문이 궁창에 대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만드셔서 ‘하늘’이라 부르셨다는 것과 궁창이 물을 위아래로 나눈다는 것이다. 1:6–25의 다른 피조물도 대개 이렇게 서술된다. 광명에 할애된 다섯 절(14–18절)은 광명이 맡은 일을 열거하고, 풀과 나무는 씨를 맺어 종류대로 대를 이으며, 물의 생물과 새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복을 받는다.

이 피조물들이 엿새의 질서를 이룬다. 하나님은 처음 사흘 동안 구획하시고 이름을 붙이셔서 형태가 없던 땅에 경계를 주시고, 다음 사흘 동안 그 경계 안을 광명과 물의 생물, 새와 땅의 짐승으로 채우신다. 두 묶음의 날은 서로 대응하지만 그 대응이 정연하지는 않으며, 광명이 둘째 날의 궁창에 놓이고 물고기가 셋째 날에 모인 바다를 헤엄치듯 앞서 마련된 것 위에 다음 피조물이 놓인다.

엿새의 서술 안에서는 해와 달과 큰 바다 생물도 피조물이다. 고대 근동에서 ‘해’와 ‘달’은 신의 이름이기도 했고, 21절의 탄니님은 시편 74:13에서 하나님이 그 머리를 깨뜨리신 ‘용들’과 같은 낱말이다. 창세기 1장에서 해와 달은 하나님이 만드셔서 하늘의 궁창에 두신 광명이고, 탄니님은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복을 주신 물속의 생물이다.

여섯째 날은 아직 절반이 남아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다스리게 하자”(1:26)고 하신다. 넷째 날 광명이 낮과 밤을 ‘주관’하는 것과 사람이 땅을 ‘다스리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일곱째 날에는 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가 없으며, 저녁과 아침으로 헤아린 그 하루는 얼마나 길었는가? 다음 글에서는 여섯째 날의 나머지와 일곱째 날을 읽는다.

주와 참고문헌

참고문헌

성경 본문과 사전

  •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한글판』. 1961. 온라인 성경. 열람 2026-10-11, 2026-10-12(출애굽기 39장), 2026-10-14(시편 19, 150편, 다니엘 12장, 에스겔 1장, 욥기 37장), 2026-10-15(창세기 7장, 신명기 4장, 시편 74, 104, 136, 148편, 예레미야 10장, 사도행전 17장).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온라인판. 표제어 ‘궁창’, ‘창공’. 열람 2026-10-12, 2026-10-14.
  •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998. 온라인 성경. 창세기 1장. 열람 2026-10-12.
  • 대한성서공회. 온라인 성경 새번역, 공동번역, 공동번역개정판. 창세기 1장. 열람 2026-10-14.
  • Mechon-Mamre. Hebrew–English Bible (마소라 본문, 모음 표기판). 일러두기, 창세기 1–2장, 출애굽기 39장, 시편 19, 74, 104, 150편, 욥기 37장, 에스겔 1장, 다니엘 12장. 열람 2026-10-11, 2026-10-12, 2026-10-14.
  • Swete, H. B., ed. The Old Testament in Greek according to the Septuagint. Bible Hub 전재, 창세기 1장. 열람 2026-10-11.
  • Biblia Sacra Vulgata. Bible Gateway 전재, 창세기 1장. 열람 2026-10-12.
  • Brown, Francis, S. R. Driver, and Charles A. Briggs. A Hebrew and English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Bible Hub 전재, 표제어 רָקִיעַ, רָקַע, פָּנִים, שַׁחַק, קֶרַח, מָאוֹר, אוֹת, מוֹעֵד, מֶמְשָׁלָה, מָשַׁל, מִין, נֶפֶשׁ, תַּנִּין, מָלֵא, בָּרָא. 인쇄 판본·쪽수 미확인. 열람 2026-10-11, 2026-10-12(רָקַע), 2026-10-14(פָּנִים, שַׁחַק, קֶרַח).
  • Liddell, Henry George, Robert Scott, and Henry Stuart Jones. A Greek-English Lexicon. Oxford: Clarendon Press, 1940. Perseus 전재, 표제어 στερέωμα. 열람 2026-10-12.
  • Lewis, Charlton T., and Charles Short. A Latin Dictionary. Oxford: Clarendon Press, 1879. Perseus 전재, 표제어 firmamentum. 열람 2026-10-12.
  • Wiktionary. 표제어 firmament, 穹(궁), 蒼(창), 空(공). 열람 2026-10-12, 2026-10-14.
  • Toy, Crawford Howell, and Caspar Levias. “Masorah.” The Jewish Encyclopedia. New York: Funk & Wagnalls, 1901–1906. JewishEncyclopedia.com 전재. 열람 2026-10-12.

고대 근동 문헌과 도판 출전

  • King, L. W., ed. The Seven Tablets of Creation, or the Babylonian and Assyrian Legends concerning the Creation of the World and of Mankind. Vol. 1. London: Luzac, 1902. Internet Archive 전재, 76–79쪽(4토판 137–146행, 5토판 1–13행). 열람 2026-10-14.
  • King, L. W., ed. Babylonian Boundary-Stones and Memorial-Tablets in the British Museum. London: British Museum, 1912. 본문 권 Internet Archive 전재, 120–21쪽(No. XXXVI). 도판 권 Internet Archive 전재, 도판 XCVIII. 열람 2026-10-15.
  • British Museum. 소장품 기록 1881,0428.34.a(박물관 번호 91000, 샤마시 석판). 열람 2026-10-15.
  • Robinson, George L. Leaders of Israel: A Brief History of the Hebrews from the Earliest Times to the Downfall of Jerusalem, A.D. 70. New York: The International Committee of 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s, 1906. Internet Archive 전재, 서문 vii–viii쪽(그림 도안에 관한 감사), 2쪽 도판. 열람 2026-10-14, 2026-10-15.

교회와 유대 전통의 문헌과 주석

  • Basil of Caesarea. Hexaemeron. Trans. Blomfield Jackson.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Second Series, vol. 8. Buffalo: Christian Literature Publishing Co., 1895. New Advent 전재, Homily III, V–VII, IX.
  • Augustine. The City of God. Trans. Marcus Dods.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First Series, vol. 2. Buffalo: Christian Literature Publishing Co., 1887. New Advent 전재, XI.7.
  • Thomas Aquinas. Summa Theologiae. Trans. Fathers of the English Dominican Province. 2nd rev. ed. 1920. New Advent 전재, I qq.67, 70–72, 74.
  • Rashi. Pentateuch with Rashi’s Commentary. Trans. M. Rosenbaum and A. M. Silbermann. 1929–1934. Sefaria 전재, 창세기 1:4, 7, 14, 22.
  • Calvin, John. Commentaries on the First Book of Moses Called Genesis. Vol. 1. Trans. John King. Calvin Translation Society, 1847(CCEL 메타데이터). CCEL 전재, 창세기 1장. 인쇄 쪽수 미확인.

현대 연구

  • Carr, David M. The Formation of Genesis 1–11: Biblical and Other Precursor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20. 10–11, 28쪽.
  • Corrigan, Kevin, and L. Michael Harrington. “Pseudo-Dionysius the Areopagit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2004; 개정 2023. 온라인판. 열람 2026-10-15.
  • Hasel, Gerhard F. “The Polemic Nature of the Genesis Cosmology.” Evangelical Quarterly 46 (1974): 81–102.
  • Kline, Meredith G. “Space and Time in the Genesis Cosmogony.” Perspectives on Science and Christian Faith 48 (1996): 2–15.
  • Poythress, Vern S. “Three Modern Myths in Interpreting Genesis 1.”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76 (2014): 321–50. 321–22, 336–38쪽.
  • Poythress, Vern S. “Correlations with Providence in Genesis 1.”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77 (2015): 71–99.
  • Poythress, Vern S. “Rain Water Versus a Heavenly Sea in Genesis 1:6–8.”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77 (2015): 181–91.
  • Young, Edward J. “The Days of Genesis.”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25, no. 1 (1962): 1–34(두 차례 연재의 첫 회).

재인용 문헌(직접 읽지 않음)

  • Maimonides(‘Rabbi Moses’). The Guide for the Perplexed, II. Aquinas, Summa Theologiae I q.74 a.3 ad 3에서 재인용.
  • Pseudo-Dionysius. De Divinis Nominibus, IV. Aquinas, Summa Theologiae I q.67 a.4 ad 2에서 재인용.
  • Babylonian Talmud, Chagigah 12a; Genesis Rabbah 4:10, 6:1. Rashi, 창세기 1:4, 7, 14 주석에서 재인용.
  • Foster, Benjamin R., trans. “Epic of Creation.” In The Context of Scripture, vol. 1, 398. Poythress 2014, 337쪽 각주 33에서 재인용.

성경 직접 인용은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한글판』(1961)을 따르며, 개역개정판·새번역·공동번역·공동번역개정판은 표현 비교에만 썼다. 히브리어 본문은 메혼 마므레의 마소라 본문을, 칠십인역은 스위트 판을 사용했다. 영어로 된 신학 문헌과 주석, 연구서는 아래에 밝힌 판본을 이 글에서 한국어로 옮기거나 요약했다. 짧게 옮긴 대목은 각주에 원문을 함께 적되, 인용문 속 원문의 각주 번호는 뺐다. 온라인 자료는 2026년 10월 11일, 12일, 14일, 15일에 확인했다.

[해석 안내] 창세기 1장의 엿새를 ‘나누시는 사흘과 채우시는 사흘’로 정리한 것, 엿새의 서술이 ‘대응을 이루면서 앞으로도 나아간다’고 종합한 것, 14·15·17절과 20절의 전치사 구별에 기대어 궁창을 ‘광명이 그 안에 놓이는 하늘이면서 땅에서 올려다볼 때 새가 그 앞을 나는 하늘’로 정리한 것, 넷째 날의 해를 ‘하나님이 하늘의 궁창에 두신 광명’으로 정리한 것, 시편 148:4의 ‘하늘 위에 있는 물들’을 창세기 1:7의 궁창 위의 물과 이은 것, 1:6–25가 피조물을 대개 하나님의 명령과 피조물이 맡은 일로 서술한다고 정리한 것, 『에누마 엘리시』와 창세기 1장의 하늘을 대조해 공통 요소와 차이를 정리한 것은 본문 관찰과 여러 해석자의 견해를 바탕으로 한 이 글의 종합 해석이다. 이 글은 궁창의 재질과 모양, 첫째 날 빛의 물리적 정체에 관한 판단을 다루지 않는다. 창조의 날의 길이는 다음 글에서 다룬다.


  1. 대한성서공회 온라인 성경의 새번역 창세기 1장, 공동번역 창세기 1장, 공동번역개정판 창세기 1장. 세 판 모두 1:6–20에서 라키아를 ‘창공’으로 옮기고 1장에 아홉 번 쓴다(개역한글과 개역개정은 ‘궁창’). 1:20 새번역 “새들은 땅 위 하늘 창공으로 날아다녀라”, 공동번역 “땅 위 하늘 창공 아래에는 새들이 생겨 날아 다녀라”(공동번역개정판은 ‘날아다녀라’).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온라인판 표제어 ‘궁창’(穹蒼) “「1」 맑고 푸른 하늘. =창천. 「2」 『기독교』 유대교에서 구분하는 세계의 하나.”, ‘창공’(蒼空) “맑고 푸른 하늘. =창천.”(열람 2026-10-14). 空(공)의 뜻(“empty; hollow; void”, “air; sky; atmosphere”)은 Wiktionary의 해당 항목(열람 2026-10-14)을 따랐다. ↩︎ ↩︎ ↩︎

  2.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한글판』(1961), 창세기 1장. 6–25절 직접 인용. 15절과 24절의 ‘(그대로 되니라)’는 괄호까지 공식 본문대로 옮겼다. 16절 끝의 ‘만드시고’는 공식 본문에서 작은 글자로 표시된 번역자 보충어이며, 히브리어 본문(וְאֵת הַכּוֹכָבִים)에는 별에 따로 붙은 동사가 없다(16절 첫 동사 וַיַּעַשׂ의 목적어). 15절과 24절의 ‘그대로 되니라’(וַיְהִי־כֵן)는 히브리어 본문에 괄호 없이 있다. 13절 ‘세째’, 19절 ‘네째’도 공식 본문의 표기다. 1:3–5, 1:26–28도 같은 쪽에서 직접 인용. ↩︎ ↩︎

  3. 히브리어 본문: Mechon-Mamre, 창세기 1장, 2장. 메혼 마므레가 넣은 쉼표·세미콜론은 원문 부호가 아니므로 인용할 때 뺐다. ↩︎

  4. Brown, Driver, and Briggs, A Hebrew and English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BDB), Bible Hub 온라인 전재. 표제어와 쓴 뜻풀이: רָקִיעַ “extended surface, (solid) expanse”, 뜻 2 “the vault of heaven, or ‘firmament,’ regarded by Hebrews as solid, and supporting ‘waters’ above it” · פָּנִים의 풀이는 1:20의 전치사를 다룬 각주에 적었다 · מָאוֹר “light, light-bearer, luminary, lamp, of sun & moon Genesis 1:14,15,16” · אוֹת 뜻 1 “sign, pledge, token”, 뜻 8 “signs, tokens of changes of weather & times Genesis 1:14 (P; of heavenly luminaries) … Jeremiah 10:2 (changes of the heavens as omens to frighten the nations)” · מוֹעֵד “appointed time, place, meeting”, 주: “It is most probable that in Genesis 1:14 (P), where מ׳ ‖ אֹתֹת, the reference is to the sacred seasons as fixed by moon’s appearance; and so also … he made the moon for sacred seasons Psalm 104:19, although many Lexicons & Commentaries refer these to the seasons of the year”(‖는 전재본에서 따옴표 두 개로 표시된 기호이며, ‖와 약어 표시 ׳의 위치는 인쇄본 관례대로 적었다) · מֶמְשָׁלָה 뜻 2 “rule of heavenly bodies”(창 1:16, 시 136:8–9) · מָשַׁל 뜻 2 “of heavenly bodies, with בְּ Genesis 1:18” · מִין “kind, species” · נֶפֶשׁ “soul, living being”, 창 2:7의 נֶפֶשׁ חַיָּה를 “a living, breathing being”으로 풀고 창 1:20, 24, 30의 같은 표현은 동물에 쓰였다고 적는다 · תַּנִּין 뜻 3 “sea- (or river-) monster, Genesis 1:21” · מָלֵא “be full, fill”(명령형 מִלְאוּ, 창 1:22) · בָּרָא “shape, create”. 이 전재의 인쇄 판본·쪽수는 확인하지 않았다. ↩︎ ↩︎ ↩︎ ↩︎

  5. BDB רָקַע “beat, stamp, beat out, spread out”, 출 39:3 “they beat out the plates of gold”, 그리고 사 42:5에 붙은 “spreadeth out the earth”와 같은 용례로 시 136:6을 함께 든다. BDB רָקִיעַ “extended surface, (solid) expanse (as if beaten out; compare Job 37:18)”, 같은 항목에 칠십인역 στερέωμα와 불가타 firmamentum을 함께 적는다. 개역한글 출 39:3 “금을 얇게 쳐서”, 시 136:6 “땅을 물 위에 펴신이에게”. 칠십인역 창 1:6 “Γενηθήτω στερέωμα ἐν μέσῳ τοῦ ὕδατος”(Swete 판, Bible Hub 전재). 불가타 창 1:6 “Fiat firmamentum in medio aquarum”(Bible Gateway). στερέωμα: Liddell, Scott, and Jones, A Greek-English Lexicon (1940), Perseus “solid body”, “foundation or framework”, “firmament, i.e. the sky, the heaven above, LXX Ge. 1.6”. firmamentum: Lewis and Short, A Latin Dictionary (1879), Perseus “a strengthening, support, prop”, “the sky fixed above the earth, the firmament (late Lat.)”. 영어 firmament가 라틴어 firmamentum에서 온 것과 穹(궁)의 뜻(“elevated and arched”, “sky”), 蒼(창)의 뜻(‘푸를 창’)은 Wiktionary의 해당 항목(열람 2026-10-12)을 따랐다. ↩︎ ↩︎ ↩︎

  6. Mechon-Mamre 마소라 본문, 창세기 1장. 1:6 “יְהִי רָקִיעַ בְּתוֹךְ הַמָּיִם וִיהִי מַבְדִּיל בֵּין מַיִם לָמָיִם”, 1:14 “יְהִי מְאֹרֹת בִּרְקִיעַ הַשָּׁמַיִם”, 1:15 “וְהָיוּ לִמְאוֹרֹת בִּרְקִיעַ הַשָּׁמַיִם”, 1:17 “וַיִּתֵּן אֹתָם אֱלֹהִים בִּרְקִיעַ הַשָּׁמָיִם”, 1:20 “וְעוֹף יְעוֹפֵף עַל־הָאָרֶץ עַל־פְּנֵי רְקִיעַ הַשָּׁמָיִם”. BDB פָּנִים “face, also faces (as turned toward one)”. 같은 항목은 1:20을 뜻 I.5 “face (= surface)”의 용례에도 올리며, 뜻 II.7.a(עַל־פְּנֵי)에서는 이 절을 “Genesis 1:20 let fowl fly עלפֿני רקיע השׁמים in front of the firmament of heaven, namely as looked up to from below, i.e. between the firmament and the earth.”로 푼다. ↩︎ ↩︎

  7. David M. Carr, The Formation of Genesis 1–11: Biblical and Other Precursor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20), 10–11쪽. 10쪽: “This starts with him splitting Tiamat’s carcass in two, with one half of the carcass becoming a heavenly barrier to keep the upper ocean from merging with the lower one (IV:137–38).” 11쪽: “Gen 1:6–7 resembles Marduk’s separation of oceans in the Enuma Elish, where Marduk separates the upper and lower seas with a heavenly roof made out of Tiamat’s carcass.” / “Yet in contrast to the Enuma Elish, we never hear what this roof in Gen 1:6–8 is made of. In this sense, the heavenly “plate” of Genesis 1 is a blind motif, likely taken from the Enuma Elish, where the corpse/roof theme marks both the defeat of Marduk’s foe and the outset of creation.” 11쪽 각주 10: “See Christoph Koch, Gottes himmlische Wohnstatt … for discussion of translation of רקיע as “plate” rather than “dome” and the particular similarity of Gen 1:6–7 to the depiction in the Enuma Elish epic.” 하늘의 판에 관한 카의 견해는 지난 글 「혼돈은 하나님 바깥에서 왔을까요?」에서도 소개했다. ↩︎ ↩︎ ↩︎

  8.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한글판』, 시편 19:1, 150:1, 다니엘 12:3, 에스겔 1:22–26, 욥기 37:18, 21. 마소라 본문(Mechon-Mamre): 시 19:2(개역한글 19:1) “וּמַעֲשֵׂה יָדָיו מַגִּיד הָרָקִיעַ”, 시 150:1 “הַלְלוּהוּ בִּרְקִיעַ עֻזּוֹ”, 단 12:3 “יַזְהִרוּ כְּזֹהַר הָרָקִיעַ”, 겔 1:22 “רָקִיעַ כְּעֵין הַקֶּרַח הַנּוֹרָא”, 1:26 “וּמִמַּעַל לָרָקִיעַ אֲשֶׁר עַל־רֹאשָׁם … דְּמוּת כִּסֵּא”, 욥 37:18 “תַּרְקִיעַ עִמּוֹ לִשְׁחָקִים חֲזָקִים כִּרְאִי מוּצָק”, 37:21 “בָּהִיר הוּא בַּשְּׁחָקִים”. BDB רָקִיעַ 뜻 1 “(flat) expanse (as if of ice, compare כְּעֵין הַקֶּרַח), as base, support … Ezekiel 1:26 (supporting י׳’s throne)”, 이어서 “Hence (Co Ezekiel 1:22) 2 the vault of heaven, or ‘firmament,’”(창 1:6–8, 14, 15, 17, 20, 시 19:2, 단 12:3, 그리고 시 150:1). BDB קֶרַח 뜻 2 “ice … probably also כְּעֵין ק׳ Ezekiel 1:22 (so Krae; most crystal, after ᵐ5)”. BDB 인용의 약어 표시 ׳는 인쇄본 관례대로 글자 뒤에 적었다. BDB רָקַע 히필 “תַּרְקִיעַ עִמּוֺ לִשְׁחָקִים Job 37:18 canst thou make with (= like) him a spreading for clouds (spread out clouds; cf, רָקִיעַ)?”. BDB שַׁחַק 뜻 2 “(thin) cloud, usually plural … Job 37:21 … = heavens, sky Job 37:18”. ↩︎ ↩︎ ↩︎

  9. John Calvin, Commentaries on the First Book of Moses Called Genesis, vol. 1, trans. John King(Calvin Translation Society, 1847), 창세기 1:6 주석, CCEL. 둘째 날: “Yet Moses has not affixed to the work of this day the note that God saw that it was good: perhaps because there was no advantage from it till the terrestrial waters were gathered into their proper place, which was done on the next day, and therefore it is there twice repeated.” 궁창: “for literally it means expanse”, “nothing is here treated of but the visible form of the world. He who would learn astronomy, and other recondite arts, let him go elsewhere.” 위의 물은 구름으로 본다: “Since, therefore, God has created the clouds, and assigned them a region above us …”. 온라인 전재의 인쇄 쪽수는 확인하지 않았다. ↩︎ ↩︎

  10. Vern S. Poythress, “Rain Water Versus a Heavenly Sea in Genesis 1:6–8,”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77 (2015): 181–91, 저자 공개 PDF. 182쪽: “I maintain that, instead of a heavenly sea, we should be thinking about rain water in clouds.” 183쪽: “In my view, Gen 1:6–8 gives us an ordinary description, a phenomenal description, a description of appearances, and does not offer any detailed “theory” about the expanse (“heaven”) or the water above it.” 181쪽 각주 1에서 포이트레스는 BDB를 단단한 궁창 해석의 예로 든다. ↩︎

  11. Basil of Caesarea, Hexaemeron, Homily III §4, §7, §10, trans. Blomfield Jackson,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Second Series, vol. 8 (1895), New Advent. §4 “Here then, according to me, is a firm substance, capable of retaining the fluid and unstable element water”, §7 “It is not in reality a firm and solid substance which has weight and resistance”. §10은 둘째 날의 “And God saw that it was good”을 풀이한다. ↩︎ ↩︎

  12.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한글판』. 시편 148:4–5(4절의 ‘찬양’은 작은 글자 보충어), 예레미야 10:2, 신명기 4:19, 시편 104:19(히브리어 עָשָׂה יָרֵחַ לְמוֹעֲדִים). 직접 인용 또는 요약. ↩︎ ↩︎ ↩︎

  13. L. W. King, The Seven Tablets of Creation, vol. 1 (London: Luzac, 1902), 77쪽, Internet Archive. 4토판 137–140행: “He split her up like a flat fish into two halves; / One half of her he stablished as a covering for heaven. / He fixed a bolt, he stationed a watchman, / And bade them not to let her waters come forth.” 144–146행: “And he founded E-šara, a mansion like unto it. / The mansion E-šara which he created as heaven, / He caused Anu, Bēl, and Ea in their districts to inhabit.” 행 번호는 King(1902)을 따랐으며 현대 판본의 행 번호와 다를 수 있다. ↩︎

  14. King, The Seven Tablets of Creation, vol. 1, 79쪽. 5토판 1–4행: “He (i.e. Marduk) made the stations for the great gods; / The stars, their images, as the stars of the Zodiac, he fixed. / He ordained the year and into sections he divided it; / For the twelve months he fixed three stars.” 12–13행: “The Moon-god he caused to shine forth, the night he entrusted to him. / He appointed him, a being of the night, to determine the days”. 음역에서 달의 신의 이름은 난나루(Nannaru)다(78쪽). ↩︎

  15. L. W. King, ed., Babylonian Boundary-Stones and Memorial-Tablets in the British Museum (London: British Museum, 1912), No. XXXVI, 121쪽, Internet Archive. 부조 설명: “In the field above the Sun-god, and within the shrine, are a lunar disk, a solar disk and an eight-pointed star, the symbols of Sin, Shamash and Ishtar.” / “The shrine is represented as resting on the heavenly ocean.” 121쪽 각주 2, 세 상징 위의 글: “Sin, Shamash and Ishtar are set over against the heavenly ocean, within the divine judge.” King은 아카드어 압수(apsû)를 ‘하늘의 바다’(heavenly ocean)로 옮겼다. 그림 4는 같은 책 도판 권(Plates)의 도판 XCVIII(Internet Archive)에서 부조 부분을 잘라 낸 것이다. 연대(기원전 860–850년경), 출토지(시파르의 태양 신전), 박물관 번호(91000)는 영국박물관 소장품 기록 1881,0428.34.a를 따랐다. ↩︎

  16. Carr, The Formation of Genesis 1–11, 11쪽: “This latter motif may have its original home in the Enuma Elish, where Marduk sets the stars in the heavens to provide heavenly “signs” used in astral divination so important to Babylonian literate culture (V:23–24). Such astral divination has no place in Priestly ideology, and so this mention of “signs” in 1:14 represents another blind motif in the text, faintly reflecting its precursor (Enuma Elish) text, but soon discarded as Genesis 1 proceeds to its report of God’s execution of God’s intent in 1:16–18, where the stars are barely mentioned and the focus is exclusively on how the sun and moon distinguish day and night.” King(1902)에서 5토판 23–24행은 달의 신에게 내리는 명령의 일부로 앞부분이 깨져 있고 별이나 징조라는 말이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이 대목은 카의 해석으로만 적는다. ↩︎

  17. Vern S. Poythress, “Three Modern Myths in Interpreting Genesis 1,”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76 (2014): 321–50. 321쪽: “Some books and articles tell us that Gen 1 naturally and understandably contains outmoded and erroneous cosmological notions common to the ancient Near East, because it was written within that cultural milieu. For instance, scholars may say that Gen 1:6-8 refers to a solid dome of sky (“the expanse”) and a heavenly sea held in by the dome (“the waters that were above the expanse”).” 321–22쪽 각주 1: “The idea of a solid dome holding in a heavenly sea appears in numerous places in OT scholarly literature (e.g., T. H. Gaster, “Cosmogony,” IDB 1:703, 704), and has made its way into lexicons (BDB 956, רָקִיעַ sense 2).” 337쪽: “earlier lines in the poem Enuma Elish depict Tiamat in bodily form (with references to legs, mouth, lips, belly, heart, and carcass)” / “the bar, the only apparently inanimate object in the description, is a “bar” or “bolt” rather than a solid dome.” 337쪽 각주 33: “Benjamin Foster (COS 1:398) offers the alternate translation “stretched out the hide,” instead of “pulled down the bar” (see n. 32 above). Presumably the “hide” is the hide of Tiamat. It might serve as a solid barrier for her internal waters. But Foster offers no explanation as to what motivates his alternate translation. … The underlying Assyrian word is parku, “bar, bolt” (CAD 12:188 B)”. 338쪽: “So it appears that the whole description is metaphorical or symbolical, or at least not physical.” ↩︎ ↩︎

  18.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창세기 1장. 창조 명령의 ‘가라사대’는 ‘이르시되’(1:3, 6, 9, 11, 14, 20, 24, 26)이고, ‘그대로 되니라’는 개역한글과 같다(1:7, 9, 15, 24, 30; 1:11은 두 판 모두 ‘그대로 되어’). 개역한글이 괄호에 넣은 15절과 24절의 ‘그대로 되니라’에 개역개정은 괄호가 없다. ↩︎

  19. Mechon-Mamre 마소라 본문에서 센 것. 창조 명령 וַיֹּאמֶר אֱלֹהִים: 1:3, 6, 9, 11, 14, 20, 24, 26(1:28의 ‘이르시되’는 복의 말씀, 1:29의 ‘가라사대’는 먹을거리를 주시는 말씀. 개역한글 1:22의 ‘가라사대’는 복의 말씀으로, 히브리어로는 וַיֹּאמֶר가 아니라 לֵאמֹר이다). ‘그대로 되니라’ וַיְהִי־כֵן: 1:7, 9, 11, 15, 24, 30(1:3에는 이 말 대신 וַיְהִי־אוֹר ‘빛이 있었고’). ‘좋았더라’ כִּי־טוֹב: 1:4, 10, 12, 18, 21, 25(1:31 ‘심히 좋았더라’). 이름을 붙이심 וַיִּקְרָא: 1:5, 8, 10. ‘나누다’ בָּדַל(히필): 1:4, 6, 7, 14, 18. ‘종류대로’: 1:11, 12(2회), 21(2회), 24(2회), 25(3회). 복 וַיְבָרֶךְ: 1:22, 28(그리고 2:3). 저녁·아침 공식: 1:5, 8, 13, 19, 23, 31. 열린 문단 표시 {פ}: 1:5, 8, 13, 19, 23, 31 끝. ↩︎

  20. Rashi, 창세기 1:7 주석, Pentateuch with Rashi’s Commentary, trans. M. Rosenbaum and A. M. Silbermann (1929–1934), Sefaria. “Why is it not stated in reference to the work of the second day “that it was good”? Because the work associated with water was not completed until the third day — He only began it on the second — and anything that is not completed is not in a state of perfection and at its best (and so cannot be termed “good”). Therefore on the third day when He completed the work associated with water and another work was commenced and finished, the words כי טוב are repeated, once in reference to the completion of the work of the second day, and again in reference to the completion of the work of that day” (Genesis Rabbah 4:10). ↩︎

  21. Thomas Aquinas, Summa Theologiae I, q.74 a.3 ad 3, trans. Fathers of the English Dominican Province, 2nd rev. ed. (1920), New Advent. “And if the words, “God saw that it was good,” are not said of the work of the second day, this is because the work of distinguishing the waters was only begun on that day, but perfected on the third.” 같은 답에서 둘째·셋째 이유를 들고 “The above three reasons are given by Rabbi Moses [Perplex. ii.]”라고 밝힌다. 이어서 “to these may be added a mystical one derived from numbers and assigned by some writers, according to whom the work of the second day is not marked with approval because the second number is an imperfect number, as receding from the perfection of unity”라고 수에 관한 신비적 이유를 하나 더 든다. ‘랍비 모세’를 마이모니데스로 본 것은 번역본이 괄호에 적은 출전 표기 ‘Perplex. ii’(마이모니데스의 The Guide for the Perplexed 2권)를 따른 것이며, 마이모니데스의 원문은 확인하지 않았다. ↩︎

  22. The Old Testament in Greek according to the Septuagint, ed. H. B. Swete, Bible Hub 전재 창세기 1장. 1:8 “καὶ ἐκάλεσεν ὁ θεὸς τὸ στερέωμα οὐρανόν· καὶ ἴδεν ὁ θεὸς ὅτι καλόν.” 칠십인역은 ‘그대로 되니라’(καὶ ἐγένετο οὕτως)를 1:7 끝이 아니라 명령 바로 뒤인 1:6 끝에 두고, 마소라 본문에 없는 1:20에도 둔다. ↩︎

  23. Crawford Howell Toy and Caspar Levias, “Masorah,” The Jewish Encyclopedia (New York: Funk & Wagnalls, 1901–1906), JewishEncyclopedia.com. “The system of critical notes on the external form of the Biblical text.” / “When, in course of time, the Masorah had become a traditional discipline, the term became connected with the verb ( = “to hand down”), and was given the meaning of “tradition.”” / “To the Masorites belongs also the credit of inventing and elaborating graphic signs to indicate the traditional pronunciation, syntactical construction, and cantillation of the Biblical text.” / “the notes on the side margins or between the columns are called the Small or Inner Masorah; and those on the lower and upper margins, the Large or Outer Masorah.” / “the enumeration of letters, words, verses, etc. … belong to the earliest labors of the Masorites” / “the invention and introduction of a graphic system of vocalization and accentuation gave rise to the Grammatical Masorah.” 문단 표시는 Mechon-Mamre 일러두기를 따랐다: “we added {S} for setumah (open space within a line) and {P} for petuHah (new paragraph on new line)”. 이 판의 창세기 1장에는 {P}가 1:5, 8, 13, 19, 23, 31 끝의 여섯 곳에 있고 {S}는 없다. ↩︎

  24. Aquinas, Summa Theologiae I, 앞의 번역. q.70 a.1(New Advent): “In recapitulating the Divine works, Scripture says (Genesis 2:1): “So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furniture of them,” thereby indicating that the work was threefold.” 이어서 창조·구별·꾸밈의 세 일과 넷째·다섯째·여섯째 날의 꾸밈을 설명한다. q.71(New Advent): “As, then, Moses makes mention of the lights and the light on the fourth day, to show that the fourth day corresponds to the first day on which he had said that the light was made, so on this fifth day he mentions the waters and the firmament of heaven to show that the fifth day corresponds to the second.” q.72(New Advent): “so the sixth day … corresponds to the third day. Hence the earth is mentioned in both places.” q.74 a.1: “the parts of the world had first to be distinguished, and then each part adorned and filled, as it were, by the beings that inhabit it.” ↩︎

  25. Meredith G. Kline, “Space and Time in the Genesis Cosmogony,” Perspectives on Science and Christian Faith 48 (1996): 2–15, ASA 온라인판. 온라인판에는 인쇄 쪽이 표시되어 있지 않아 절 제목으로 위치를 적는다. “Replication Relationship of the Two Registers” 절: “the six days fall naturally into two triads, one dealing with creation kingdoms and the other with the creature kings given dominion over them. As frequently noticed, the two triads run in parallel with obvious correlation of their successive members.” 같은 절에서 첫째·넷째 날은 위(하늘), 셋째·여섯째 날은 아래(땅), 둘째·다섯째 날은 둘을 잇는 고리로 설명한다: “the second members are strikingly designed to serve as links between the first and third members. For these middle units of the two triads each combines both upper and lower levels: the sky and the sea in day two and the birds of the air and fish of the sea in day five.” 다섯째 날의 새와 물고기가 둘째 날의 하늘과 바다를 다스리는 방식: “God’s blessing-mandate to the creatures of day five closely resembles the dominion mandate afterwards given to man. In each case royal occupation of the assigned domain is to be accomplished by being fruitful, multiplying, and filling (Gen. 1:22, 28). So the birds and fish would exercise their rule over the sky and sea, the kingdom realms of day two.” 클라인은 이 논문에서 바다가 셋째 날에 모인다는 점을 다루지 않는다(전문 확인). “Lower Register Time” 절: “In terms of chronology, day four thus brings us back to where we were in day one … The literary sequence is then not the same as the temporal sequence of events.” / “It is clearly the light phenomena (kingdom) of day one over which the luminaries (kings) of day four rule, producing and regulating it.” ↩︎ ↩︎ ↩︎

  26. Edward J. Young, “The Days of Genesis,”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25, no. 1 (1962): 1–34. 쪽을 그대로 둔 재조판 공개본으로 읽었다. 27쪽: “We may note that the light-bearers of the fourth day are placed in the firmament of heaven (1:14, 17). The firmament, however, was made on the second day (1:6, 7).” 28쪽: “The fish are to swim in the seas [히브리어 생략], but the seas were not formed until the third day.” / “we cannot regard Genesis one as containing two groups of three days, each day of one group being a genuine parallel to the corresponding day of the other set.” / “That there is a certain amount of parallelism cannot be denied.” / “That which rules (the heavenly bodies) and that which is ruled (the day) are not the same.” 29쪽: “They do not parallel one another, other than that light characterizes one day and light-bearers the other.” 29쪽 각주 65: “It is sufficiently weighty, however, to show that the alleged parallelism between days two and five is an illusion.” 30쪽: “At best it may be said that the dry land of day three is the sphere in which man and the animals live. This, however, is a parallelism which applies only to a part of the third day.” 영이 시간 순서를 지키는 쪽이라는 점은 6쪽 “Before we attempt to evaluate the arguments employed in defense of a non-chronological view of the days of Genesis one, it is necessary to delineate briefly what we believe to be the nature of the Bible’s first chapter.”, 27쪽 “Even on this construction, however, a certain amount of chronology is retained. Days two-five must follow days one-four, and days three-six must follow days two-five.”, 34쪽 “What must be denied is the idea that the presence of such passages somehow supports the view that Genesis one is to be interpreted non-chronologically.”에서 확인된다. ↩︎ ↩︎

  27. Vern S. Poythress, “Correlations with Providence in Genesis 1,”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77 (2015): 71–99, 저자 공개 PDF. 95쪽: “(5) Lights can appear in the expanse (day 4) only after there is an expanse (day 2). (6) Creatures appear in the sea (day 5) only after there is a sea (day 3).” / “The sense of progress through the events narrated on successive days counts against a “pure” framework approach that says that the order of days is purely a literary device.” / “Ordinary analogies from providence show that we can have a consistent interpretation of day 1 and day 4 such that the two do not collapse into one another. Light can appear without the disks of heavenly light, in the form of diffuse light, such as the light of dawn before the sun disk comes above the horizon, and the light from the clouds on an overcast day. The assumption that light must come from light-bearing bodies comes from modern scientific knowledge, not from ordinary observation of providence.” 96쪽: “Thus, there are grounds for thinking that the events come basically in chronological order.” ↩︎ ↩︎ ↩︎

  28. Basil, Hexaemeron, Homily V §1, §2, §10, 앞의 번역, New Advent. §1 “For the voice that was then heard and this command were as a natural and permanent law for it; it gave fertility and the power to produce fruit for all ages to come” / “The reason why the adornment of the earth was before the sun is the following; that those who worship the sun, as the source of life, may renounce their error.” §2 “So that the shoot of a reed does not produce an olive tree, but from a reed grows another reed, and from one sort of seed a plant of the same sort always germinates.” §10 “Like tops, which after the first impulse, continue their evolutions, turning upon themselves when once fixed in their centre; thus nature, receiving the impulse of this first command, follows without interruption the course of ages, until the consummation of all things.” ↩︎ ↩︎ ↩︎

  29. Calvin, 앞의 책, 창세기 1:11 주석. “For though it was already destined to bring forth fruit, yet till new virtue proceeded from the mouth of God, it must remain dry and empty.” / “Moreover, it did not happen fortuitously, that herbs and trees were created before the sun and moon.” / “but in order that we might learn to refer all things to him he did not then make use of the sun or moon.” ↩︎ ↩︎

  30. Carr, 앞의 책, 28쪽 각주 45: “There are some signs that this unusually extended report in Gen 1:14–18 has undergone one or more stages of expansion, but it is extremely difficult to identify the exact shape of such expansions in a methodologically controlled way.” ↩︎

  31. Gerhard F. Hasel, “The Polemic Nature of the Genesis Cosmology,” Evangelical Quarterly 46 (1974): 81–102. 89쪽: “Gen. 1 avoids the names “sun” and “moon” undoubtedly because these Common Semitic terms are at the same time names for deities.” / “The heavenly bodies appear in Genesis in the “degrading” status of “luminaries” whose function it is to “rule”. As carriers of light they have the serving function “to give light” (vss. 15-18).” / “The enigmatic Hebrew phrase “and the stars” in vs. 16 appears to be a parenthetical addition, whose purpose it is, in view of the prevalent star worship in Mesopotamia, to emphasize that the stars themselves are created things and nothing more.” 87쪽: “The tanninim of vs. 21 are mere creatures in the water.” 앤드루스 대학교 기관 저장소의 서지는 46권(1974)이며, 공개 스캔본 표지의 ‘45.2’는 이와 다르다. ↩︎ ↩︎

  32. Basil, Hexaemeron, Homily VI §2, §3, §5–8, 앞의 번역, New Advent. §2 “Already light was created; why therefore say that the sun was created to give light?” / “Then the actual nature of light was produced: now the sun’s body is constructed to be a vehicle for that original light. A lamp is not fire.” / “However, the sun and the moon did not yet exist, in order that those who live in ignorance of God may not consider the sun as the origin and the father of light, or as the maker of all that grows out of the earth. That is why there was a fourth day”. §3 “Even I do not pretend to be able to separate light from the body of the sun; but I maintain that that which we separate in thought, may be separated in reality by the Creator of nature.” §5 “But those who overstep the borders, making the words of Scripture their apology for the art of casting nativities, pretend that our lives depend upon the motion of the heavenly bodies”. §7 “If evil is inherent in their nature, the Creator is the author of evil.” / “Under the reign of necessity and of fatality there is no place for merit, the first condition of all righteous judgment.” §8 “Let them be for days says Scripture, not to produce them but to rule them; because day and night are older than the creation of the luminaries and it is this that the psalm declares to us. The sun to rule by day…the moon and stars to rule by night.”(New Advent가 본문에 넣은 성구 표시는 뺐다) ↩︎ ↩︎ ↩︎ ↩︎

  33. Augustine, De Civitate Dei XI.7, trans. Marcus Dods,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First Series, vol. 2 (1887), New Advent. “but the first three days of all were passed without sun, since it is reported to have been made on the fourth day.” / “but what kind of light that was, and by what periodic movement it made evening and morning, is beyond the reach of our senses; neither can we understand how it was, and yet must unhesitatingly believe it. For either it was some material light, whether proceeding from the upper parts of the world, far removed from our sight, or from the spot where the sun was afterwards kindled; or under the name of light the holy city was signified, composed of holy angels and blessed spirits”. ↩︎

  34. Rashi, 창세기 1:14, 1:4 주석, 앞의 번역, Sefaria. 1:14: “They had been created on the first day, but on the fourth He commanded them to be suspended in the firmament (Chagigah 12a).” / “This took place after the primeval (divine) light was conserved for the righteous”. 1:4: “He saw that the wicked were unworthy of using it (the light); He, therefore, set it apart (ויבדל), reserving it for the righteous in the world to come (Chagigah 12a).” 라쉬는 같은 곳에서 문자적 의미로는 빛과 어둠이 섞이지 않게 나누신 것이라고도 푼다. 모아딤에 대하여: “This is written with a view to the future when Israel would receive command regarding the festivals which would be calculated from the time of the lunar conjunction (Genesis Rabbah 6:1).” ↩︎ ↩︎

  35. Aquinas, Summa Theologiae I, 앞의 번역. q.67 a.4 ad 2(New Advent): “I answer, then, with Dionysius (Div. Nom. iv), that the light was the sun’s light, formless as yet, being already the solar substance, and possessing illuminative power in a general way, to which was afterwards added the special and determinative power required to produce determinate effects.” q.70 a.1 ad 2: “No difficulty exists if we follow Augustine in holding the light made on the first day to be spiritual, and that made on this day to be corporeal.” 위디오니시우스의 원문은 확인하지 않았다. ↩︎

  36. Kevin Corrigan and L. Michael Harrington, “Pseudo-Dionysius the Areopagit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2004, 개정 2023), 온라인판 1절: “Though Pseudo-Dionysius lived in the late fifth and early sixth century C.E., his works were written as if they were composed by St. Dionysius the Areopagite, who was a member of the Athenian judicial council (known as ‘the Areopagus’) in the 1st century C.E. and who was converted by St. Paul.” 개역한글 사도행전 17:34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 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열람 2026-10-15. ↩︎

  37. Calvin, 앞의 책, 창세기 1:3, 1:14, 1:16 주석. 1:3: “It did not, however, happen from inconsideration or by accident, that the light preceded the sun and the moon. To nothing are we more prone than to tie down the power of God to those instruments the agency of which he employs.” / “Therefore the Lord, by the very order of the creation, bears witness that he holds in his hand the light, which he is able to impart to us without the sun and moon.” 1:14: “For Moses relates nothing else than that God ordained certain instruments to diffuse through the earth, by reciprocal changes, that light which had been previously created.” 1:16: “Yet let us remember, that it is such a government as implies that the sun is still a servant, and the moon a handmaid.” ↩︎ ↩︎

  38. Basil, Hexaemeron, Homily VII §1, §6, 앞의 번역, New Advent. §1 “Then for the first time is made a being with life and feeling.” §6 “Scripture gives them the name of great not because they are greater than a shrimp and a sprat, but because the size of their bodies equals that of great hills.” / “Such are these animals created to strike us with terror and awe.” ↩︎ ↩︎

  39.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한글판』, 시편 74:13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 가운데 용들의 머리를 깨뜨리셨으며”. 히브리어 ‘라셰 탄니님’. 탄니님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지난 글 「혼돈은 하나님 바깥에서 왔을까요?」(/2026/10/06/005-genesis-chaos-deep/)에 있다. 창세기 1:1–2:3에서 ‘바라’는 1:1, 1:21, 1:27(세 번), 2:3에 쓰였다. ↩︎

  40. Calvin, 앞의 책, 창세기 1:22 주석. “He therefore blesses his creatures when he commands them to increase and grow; that is, he infuses into them fecundity by his word.” ↩︎

  41. Calvin, 같은 책, 창세기 1:24 주석. “But whence has a dead element life? Therefore, there is in this respect a miracle as great as if God had begun to create out of nothing those things which he commanded to proceed from the earth.” 복이 없는 까닭: “Yet it may be inquired, why He does not here also add his benediction? I answer, that what Moses before expressed on a similar occasion is here also to be understood, although he does not repeat it word for word.” ↩︎ ↩︎

  42. Basil, Hexaemeron, Homily IX §3, 앞의 번역, New Advent. “Thus when the soul of brutes appeared it was not concealed in the earth, but it was born by the command of God.” ↩︎

  43. Aquinas, Summa Theologiae I, q.72 ad 2, ad 4, 앞의 번역. ad 2: “By “cattle,” domestic animals are signified, which in any way are of service to man: but by “beasts,” wild animals such as bears and lions are designated.” ad 4: “The blessing of God gives power to multiply by generation, and, having been mentioned in the preceding account of the making of birds and fishes, could be understood of the beasts of the earth, without requiring to be repeated.” ↩︎ ↩︎

  44. Rashi, 창세기 1:22 주석, 앞의 번역, Sefaria. “it is true that beasts also were in need of a blessing, but on account of the serpent that was to be cursed in the future, He did not bless them, in order that it might not be included in the bless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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