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게 지으셨는데, 왜 새 마음이 필요할까요?

04 우물가 산책 · 창세기 1:31; 시편 51:10

하나님이 좋게 지으신 세계에서 우리는 왜 새 마음을 구할까요? 창조의 선함과 인간의 죄를 구별하고, 용서와 함께 삶을 새롭게 하시는 은혜를 살펴봅니다.

창세기 1:31; 시편 51:10각주 11

먹선 삽화. 새벽 해 아래 돌 위에 금이 갔다가 이어 붙인 오래된 흙 그릇이 빗물을 담고 있고, 그 옆 베어진 나무 그루터기에서 새 순과 잎이 돋아난다. 뒤로 열매 맺은 나무들과 먼 도시가 보인다

지난 글에서는 삶을 선물로 받아들이는 일과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을 선하다고 판단하는 일을 구별했습니다. 하나님이 생명과 살아갈 세계를 주셨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도, 아픈 일은 아프다고 말하고 부당한 일은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이 구별은 내가 한 일을 돌아볼 때에도 필요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이지만,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선하지는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고, 내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형편을 외면하기도 합니다.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같은 행동을 되풀이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좋게 지으신 사람에게 왜 마음의 새로움이 필요할까요? 새로워진다는 것은 나의 무엇이 달라지는 일일까요?

하나님은 지으신 세계 전체를 좋다고 보셨습니다

창세기 1장은 빛과 땅과 바다, 식물과 여러 생명의 창조를 차례로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생물들이 번성하도록 복을 주시고, 사람과 다른 생명에게 먹을 것을 주십니다. 그리고 여섯째 날의 끝에서 지으신 모든 것을 돌아보십니다.

창세기 1:31 · 개역한글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한글판』(1961).1

하나님이 좋다고 보신 대상은 사람만이 아닙니다. 사람이 다른 생명들과 함께 살아갈 세계 전체입니다. 앞에서는 창조하신 것들을 차례로 좋다고 평가하셨다면, 여기서는 그 모든 것을 함께 보시고 심히 좋다고 하십니다.2

이 말씀은 세계가 처음부터 잘못 만들어졌다거나 몸을 지니고 사는 일 자체가 악하다는 생각을 돌아보게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지으신 세계를 기뻐하십니다. 우리도 그 세계에서 생명을 얻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이라는 사실이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생명을 주신 분께 감사하는 일과, 그 생명으로 내가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는 일은 함께 필요합니다. 창세기 1:31은 창조된 세계를 평가하는 말씀이지, 이후 사람들이 저지를 모든 일을 미리 승인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죄를 고백하는 사람은 새 마음을 구합니다

시편 51편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시입니다. 이 시의 표제는 다윗이 밧세바와 관계한 뒤 선지자 나단이 찾아온 사건을 가리킵니다. 사무엘하 11–12장에서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를 데려오게 하고, 우리아를 전투 중 죽게 할 명령을 내립니다. 나단은 그가 한 일을 책망합니다.3

이 이야기와 함께 읽으면 시편의 죄 고백은 구체적인 무게를 갖습니다. 왕의 욕망과 명령으로 다른 사람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괴롭다는 말만으로 그 일을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시편의 화자는 먼저 죄를 씻어 달라고 구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간구합니다.

시편 51:10 · 개역한글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한글판』(1961). 히브리어 절수로는 51:12입니다.4

여기서 ‘정한 마음’은 깨끗한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마음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레브’(לֵב)는 이 문맥에서 감정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판단하며 행동하는지와 관련됩니다. ‘정직한’으로 옮긴 ‘나콘’(נָכוֹן)에는 견고하게 서 있다는 뜻이 있습니다. 대한성서공회 온라인 본문도 이 말에 ‘견고한’이라는 대안 번역을 붙입니다.5

그러므로 이 간구는 잘못을 저지른 뒤 불편해진 기분만 편하게 해 달라는 요청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판단하고, 그 뜻을 따라 살아갈 마음과 의지를 구하는 것입니다. 죄를 용서해 달라는 간구에, 그 죄를 행한 자신을 새롭게 해 달라는 간구가 이어집니다.

칼뱅도 이 대목을 주석하며 죄의 용서와 사람을 거룩하게 하시는 일을 구별했습니다. 그는 ‘창조하시고’라는 표현에서 사람의 변화가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다는 고백을 읽었습니다. 잘못에서 돌이키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것까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설명입니다.6

하나님이 새롭게 하시는 것은 우리의 삶입니다

여기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하나님이 선하게 지으셨는데 왜 새롭게 하셔야 할까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하나님이 사람을 악하게 창조하셨는지 묻고, 그렇지 않다고 답합니다. 인간의 부패는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에서 비롯되었으며, 성령께서 사람을 거듭나게 하셔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선한 창조와 인간의 죄,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움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 성경 본문을 함께 읽어 정리한 교회의 신학적 설명입니다.7

이 구별에 따르면 우리의 죄는 하나님이 처음부터 사람을 악하게 만드셨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선하게 지으셨다는 말을 근거로 지금의 자신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죄를 행하는 사람입니다. 새 마음은 그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합니다.

루터교의 일치신조도 죄가 인간을 깊이 부패시켰다고 말하면서, 인간 자신과 그를 부패하게 하는 죄를 구별합니다. 죄를 지은 사람도 여전히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이며, 하나님은 그 사람을 죄에서 깨끗하게 하십니다. 사람과 죄를 구별하는 것이 죄를 가볍게 보거나 내 책임을 피한다는 뜻은 아닙니다.8

이 설명은 회개할 때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버려야 하는 것은 사람을 해치고 하나님을 거스르는 죄입니다. 하나님이 새롭게 하시는 대상은 그 죄를 행한 사람입니다. 나의 잘못을 인정하는 일과, 하나님이 나를 지으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함께 가능합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이 회복을 그리스도와 연결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성령으로 자신의 형상에 맞게 회복시키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에는 죄를 슬퍼하며 그 죄에서 떠나는 일과,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일이 함께 있습니다.7

이것은 스스로 충분히 좋은 사람이 된 뒤에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시편의 화자는 죄를 인정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이미 새로워졌다고 선언하지 않고, 하나님께 자신을 새롭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새 마음은 이웃을 대하는 말과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마음이 새로워졌다는 말은 실제 삶에서 어떤 뜻을 가질까요?

에베소서 4장은 그리스도를 배우는 삶을 설명하면서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거짓말을 버리고 이웃에게 참된 말을 하며, 도둑질을 그치고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어려운 사람에게 나누라고 권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과 친절, 용서도 함께 이야기합니다.9

이 말씀에서 새로움은 다른 사람과 살아가는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같은 입으로 어떤 말을 하는지, 같은 손으로 무엇을 하는지가 달라집니다. 다른 사람을 속이던 사람이 진실을 말하고, 빼앗던 사람이 수고하여 나누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새롭게 하신다는 고백은 내가 해야 할 일을 없애지 않습니다. 내가 가한 피해를 인정하고, 해로운 행동을 멈추고,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바로잡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다는 이유로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문제가 끝났다고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시편 51편과 에베소서 4장을 함께 읽으면, 새 마음을 구하는 간구가 어떤 삶으로 이어지는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시편이 죄를 인정하며 하나님의 회복을 구한다면, 에베소서는 그리스도를 배운 사람이 이웃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움은 우리가 몸을 지니고 말하고 일하며 살아가는 바로 그 삶에 나타납니다.

고통이 남아 있다고 마음이 새롭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새 마음의 필요를 말할 때, 고통받는 사람을 곧바로 죄를 고백해야 할 사람으로 지목해서는 안 됩니다. 시편 51편의 화자는 자신이 행한 죄를 인정합니다. 그 말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은 이에게 옮겨 “먼저 당신 마음이 달라져야 한다”고 요구하면, 잘못을 저지른 사람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넘기게 됩니다.

누가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빌라도의 폭력으로 죽은 사람들과 망대가 무너져 죽은 사람들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다른 사람보다 죄가 더 많아서 죽은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누군가 불행을 겪었다는 이유로 그 사람에게 더 큰 죄가 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10

로마서 8장 23절에서 바울은 성령을 받은 사람들도 탄식하며, 하나님께서 죽을 우리의 몸을 다시 살리실 날을 기다린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사람 안에서 일하시는 것과 그 사람이 아직 고통을 겪는 것은 함께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고통이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의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11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하나님이 좋게 지으신 세계에서 우리는 그분의 뜻을 거스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창조의 선함을 고백하면서도 용서와 새 마음을 구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움은 그분이 지으신 삶을 회복하여, 하나님과 이웃 앞에서 바르게 살아가게 하시는 은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과, 그 생명으로 내가 행한 죄를 인정하는 마음은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삶을 선물로 받아들이기에 그 삶으로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하는지도 돌아보게 됩니다. 창조의 선함을 믿는 사람에게 변화는 필요한 일이며, 새로워질 소망 또한 하나님께 구할 수 있습니다.

주와 참고문헌

성경 직접 인용은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한글판』(1961)을 따릅니다. 신학 문헌은 아래에 밝힌 영어 본문을 요약했습니다. 온라인 본문은 2026년 9월 29일 확인했으며, 9월 30일 집필에는 그때 보존한 본문과 연구 기록을 다시 대조했습니다.

[해석 안내] 창세기의 창조 평가와 시편의 새 마음 간구를 연결하고, 에베소서의 이웃을 대하는 삶으로 이어 간 설명은 여러 본문과 신학 문헌을 함께 읽은 이 글의 종합 해석입니다. 두 중심 구절에 같은 창조 동사가 쓰인다거나 시편이 창세기 1:31을 직접 인용한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이 글은 악의 기원이나 모든 고난의 원인을 설명하려는 글이 아닙니다.


  1.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한글판』(1961), 창세기 1:1–31, 특히 20–31절. 31절 직접 인용, 나머지는 문맥 요약. 공식 본문. ↩︎

  2. David M. Carr, The Formation of Genesis 1–11: Biblical and Other Precursor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20), ch. 1, “Interim Conclusion on Freestanding Literary Precursors to Genesis 1,” 비교표 뒤 마지막 문단. 반복되는 창조 평가와 마지막 전체 평가를 구별하는 관찰을 참고했다. 소장 PDF 원본의 해당 면과 화면을 확인했다. 자료 형성에 관한 저자의 가설을 이 글의 창조·죄·회복 논증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

  3. 대한성서공회, 같은 판본, 사무엘하 11장, 특히 2–5, 14–17, 26–27절; 12장, 특히 1–18절. 시편의 표제가 가리키는 사건을 요약했으며, 이것으로 시 전체의 집필 연대를 확정하지 않는다. 12:13–18의 용서 이후 심판과 아이의 죽음은 별도의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다. 이 글의 회복 논의가 그 문제를 해결했다는 뜻은 아니다. ↩︎

  4. 대한성서공회, 같은 판본, 시편 51편 표제와 1–14절, 특히 1–3, 10–12절. 10절 직접 인용. 공식 본문. 표제를 1–2절로 세는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해당 구절이 12절이다. 히브리어 본문. ↩︎

  5. Francis Brown, S. R. Driver, and Charles A. Briggs, A Hebrew and English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Bible Hub 온라인 전재: לֵב, 4–6, 특히 6a, טָהוֹר, 3, כּוּן, 니팔 2. 시편 51:12(개역한글 51:10)의 용례를 확인했다. ‘견고한’은 대한성서공회 공식 HAN 본문의 대안 번역에도 나온다. 이 전재의 인쇄 판본·쪽수는 확인하지 않았다. ↩︎

  6. John Calvin, Commentary on the Book of Psalms, vol. 2, trans. James Anderson, 시편 51:10 주석 첫 부분. 죄의 용서에서 성화의 간구로 넘어가는 설명, 최초의 중생과 넘어진 사람의 회복을 하나님의 은혜에 돌리는 논의를 요약했다. CCEL 본문. 영어 번역을 사용했으며, 해당 온라인 전재의 인쇄 출판연도·쪽수는 확인하지 않았다. ↩︎

  7. Heidelberg Catechism (1563), Q&A 6–8, 86, 88–90. 선한 창조·타락에 따른 부패·성령의 갱신을 구별하고, 그리스도 안의 회복과 새 삶을 설명하는 문답. Christian Reformed Church 영어 게시본. 6–8문이 시편 51:10을 직접 주석하는 것은 아니다. ↩︎ ↩︎

  8. Formula of Concord, Solid Declaration I.29, 33–45, 특히 34, 38–39, 45. 인간의 본성과 죄를 구별하면서 죄의 깊은 부패를 설명하는 대목. Triglot Concordia (St. Louis: Concordia Publishing House, 1921), F. Bente·W. H. T. Dau 영어 번역. BookOfConcord.org 전재. 루터 개인의 글이 아닌 루터교 신앙고백 문헌이다. ↩︎

  9.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한글판』, 에베소서 4:20–32, 특히 22–25, 28–32절. 공식 본문. 새 사람과 구체적인 말·노동·나눔·용서를 문맥에 따라 요약했다. 에베소서가 시편 51:10을 직접 인용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

  10. 대한성서공회, 같은 판본, 누가복음 13:1–5. 공식 본문. 피해자의 더 큰 죄를 부정하는 말씀과 청중을 향한 회개 촉구를 함께 요약했다. ↩︎

  11. 대한성서공회, 같은 판본, 로마서 8:11, 18–27, 특히 22–23절. 공식 본문. 23절의 몸의 구속을 기다리는 소망을 11절의 죽을 몸을 살리신다는 약속과 함께 풀어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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