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우물가 산책 · 창세기 1:1; 1:20–30; 사도행전 17:24–28; 시편 104편; 마태복음 6:25–34
하나님은 왜 세계를 지으셨을까요? 세계와 생명에 베푸신 선하심에서 우리의 의미를 찾고, 삶에 대한 감사가 모든 사건을 선하다고 판단하는 것과 어떻게 다른지 살펴봅니다.
창세기 1:1; 1:20–30; 사도행전 17:24–28; 시편 104편; 마태복음 6:25–34각주 7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힘이 됩니다. 내가 하는 일이 도움이 되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서 자신의 의미를 확인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으신 하나님께 나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하나님께 내가 필요하지 않다면, 그분은 왜 나를 지으셨을까요?
지난 글에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존재하게 하셨고, 우리는 그 세계 안에서 실제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살아간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그 관계를 한 걸음 더 묻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왜 세계와 그 안의 우리를 지으셨을까요?
하나님이 나를 지으신 뜻을 살피려면, 먼저 내가 살아가는 이 세계를 왜 지으셨는지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빛과 물, 땅과 다른 생명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생명과 함께 살아갈 세계를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17장에서 바울은 아테네 사람들에게 세계와 그 안의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을 설명합니다. 그 설명에는 하나님께 부족함이 없다는 말과,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다는 말이 함께 나옵니다.
사도행전 17:25 · 개역한글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한글판』(1961).1
바울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생명을 주시는 분과 그 생명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관계로 설명합니다.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힘입어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받아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는지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 서술을 보면 그 베푸심이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빛과 낮과 밤이 있고, 물과 땅이 나뉘며, 땅에는 식물이 자랍니다. 물에는 생물이 살고 하늘에는 새가 날며, 땅에는 여러 짐승과 사람이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생물들이 번성하도록 복을 주시고, 사람과 땅의 여러 생명에게 먹을 것을 주십니다. 생명을 지으시는 일에는 그 생명이 살아갈 세계를 마련하시는 일이 함께 있습니다.2
칼뱅은 『기독교강요』에서 이 창조의 순서에 주목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지으시기 전에 빛과 먹을거리,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먼저 마련하셨다는 것입니다. 칼뱅은 여기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아버지다운 선하심을 봅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를 돌보셨다는 뜻입니다.3
이 설명은 창조를 지금의 삶과 이어 줍니다. 사람이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어딘가에서 몸을 지니고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먹고 마시고 쉬며, 다른 사람과 만나고 일할 수 있는 세계가 함께 주어져야 합니다. 칼뱅이 창조의 순서에서 읽어 낸 배려는 바로 그 삶의 조건을 향합니다.
칼뱅의 설명은 사람을 향한 배려에 초점을 두지만, 창세기는 사람 이외의 생명도 함께 이야기합니다. 바다의 생물과 새들도 복을 받고 번성하며, 땅의 짐승들도 먹을 것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 안에는 각기 살아가고 활동하는 여러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갈 세계를 받았다는 고백에는 그 생명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도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선함을 베푸신다는 말을 창조 이후의 특별한 도움에서만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세계와 그 안의 생명이 실제로 존재하고 살아가게 하신 일 자체가 하나님의 베푸심입니다. 우리가 숨 쉬고 몸을 움직이며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주셨다는 데서, 창조의 선하심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선하심을 나누고자 세상을 지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그런 세계를 주고자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스스로 충분하시다는 사실만으로는 이 질문의 답이 다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뜻으로 세계와 생명을 지으셨는지를 함께 살펴야 합니다.
조너선 에드워즈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선하심을 베푸시고, 피조물의 행복과 거룩함을 기뻐하신다고 설명합니다. 에드워즈에게 이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선하심을 기뻐하시는 일로 이어집니다.4
이 설명을 앞에서 살핀 창조에 연결하면,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를 하나님의 선한 뜻에서 찾게 됩니다. 하나님은 생명들이 실제로 살아가게 하시고, 그들에게 좋은 것을 주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살아갈 세계를 주셨고,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며 그분과 교제하도록 지으셨습니다. 에드워즈는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며 그분과 교제하는 데서 피조물의 참된 행복을 찾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셨다’는 말도 이 관계 안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하나님이 자신의 능력과 지혜와 선하심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세계를 창조하셨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세계에 생명과 질서를 주시고, 피조물에게는 좋은 것을 주시는 선한 분이십니다.5
에드워즈의 글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피조물의 행복이 이렇게 연결됩니다. 피조물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누리는 바로 그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과의 교제 자체가 좋은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과 우리가 그분 안에서 누리는 선함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4
이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은 나의 성취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내가 무엇을 이루기 전부터 세계와 생명이 주어졌고, 그 베푸심에는 이미 하나님의 선하심이 드러나 있습니다. 나의 존재와 삶도 그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찬양하며, 주께 받은 삶으로 다른 사람을 돌봄은 그 선하심에 대한 응답입니다. 나의 수고와 선택은 그러해야 합니다.
여기서 창조를 뜻하신 하나님의 자유도 함께 말해야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하나님이 스스로 충분하시며, 자신의 자유로운 뜻으로 일하신다고 설명합니다. 창조는 하나님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반드시 일어나야 했던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계를 지으시고 그 안의 피조물에게 좋은 것을 주기를 원하셨습니다.5
이제 창조의 이유에 이렇게 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선함을 나누고자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갈 세계와 생명을 주시고, 그분의 선하심을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창조주를 향한 감사는 이 베푸심을 알아보는 데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삶이 선물이어도, 모든 일이 선한 것은 아닙니다
시편 104편은 샘물을 마시는 들짐승과 나무에 깃드는 새, 먹을 것을 얻는 생명들과 저녁까지 일하는 사람을 함께 노래합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6장에서 하나님이 기르시는 새와 입히시는 들풀을 보며 우리의 삶을 생각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우리가 몸을 지니고 살아가는 세계와 이어져 있습니다.6
그래서 나에게 특별한 성취의 순간이 오기 전에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 세계에서 생명을 얻고 살아간다는 사실이 이미 주님의 베푸심이 이루신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삶을 선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을 선하다고 부르는 뜻이 아닙니다. 아픈 일은 여전히 아프고, 부당한 일은 바로잡아야 합니다. 왜 그런 일을 겪었는지 끝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시편 104편은 생명과 죽음을 함께 말하고, 마태복음 6장은 하루의 괴로움을 전합니다. 이 말씀들을 읽는다 하여 실제 삶의 고통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6
그러나 고난이 있는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며 감사하는 일은 가능합니다. 감사함은 삶이 늘 순조로웠다는 고백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계를 지으시고 그 안에서 내가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 하셨다는 사실, 그 베푸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슬픔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고난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것이 내 삶에 실제로 일어났다는 인정입니다. 고통을 줄이려 애쓰고, 부당함에 저항하고, 도움을 구하는 일도 그 삶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삶이 선물이라는 고백이 고난을 지워 버릴 수는 없지만, 고난이 내 삶의 전부가 아님을 알게 합니다.
나의 생명과 살아갈 세계를 주신 선하심에 감사합니다
루터는 『소교리문답』에서 하나님이 자신과 모든 피조물을 지으셨다고 고백한 뒤, 몸과 생명, 이성과 감각, 음식과 옷,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공로나 자격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버지다운 선하심과 자비로 이 모든 것을 받는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주님을 찬양해야 한다고 고백합니다.7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나는 하나님이 생명을 주시고, 그분이 지으신 세계에서 살아가도록 뜻하신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나의 의미는 내가 무엇을 이루었느냐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이미 그 이전에 주어진 삶에 감사하고, 그 삶으로 주님께 응답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고통받는 사람에게 감사를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슬픔을 충분히 말하면서, 그 슬픔 속에서도 삶을 주신 선하심에 감사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뜻하여 지으신 세계 안에서 생명을 얻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내가 겪은 아픔을 아프다고 말하면서도, 나의 생명과 살아갈 세계를 주신 하나님의 선하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주와 참고문헌
성경 직접 인용은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한글판』(1961)을 따릅니다. 신학자의 논의는 아래에 밝힌 영어 본문을 바탕으로 요약했습니다.
[해석 안내] 세계의 창조에서 개인의 의미와 감사로 이어지는 설명, 특히 삶을 선물로 받아들이는 일과 개별 사건의 선악을 구별하는 대목은 성경과 신학 문헌을 함께 읽은 이 글의 종합 해석입니다. 특정 성경 구절이나 신학자의 직접 인용이 아닙니다.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한글판』(1961), 사도행전 17:24–28. 25절 직접 인용, 나머지는 문맥 요약. 공식 본문. ↩︎
대한성서공회, 같은 판본, 창세기 1:1–30, 특히 20–30절. 창조의 순서와 생명에게 주시는 복·먹을거리를 요약했다. 공식 본문. ↩︎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I.14.2, 20, 22. Henry Beveridge 영어 번역, CCEL 온라인판. 사람보다 앞서 살아갈 세계를 마련하신 아버지다운 배려를 설명하는 대목. 해당 장. ↩︎
Jonathan Edwards, A Dissertation Concerning the End for Which God Created the World, ch. I, sect. IV, 반론 I에 대한 답변 1 및 반론 IV에 대한 답변. Works of Jonathan Edwards, vol. 1, CCEL 온라인판. 하나님의 충족성과 피조물의 행복을 기뻐하심, 하나님의 영광과 피조물이 누리는 행복·하나님과의 교제를 연결하는 논의. 해당 절. ↩︎ ↩︎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II.1–2, IV.1. 하나님의 자유와 충족성, 창조를 통한 능력·지혜·선하심의 영광을 설명하는 대목. Orthodox Presbyterian Church 게재 본문. ↩︎ ↩︎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한글판』, 시편 104:10–30, 마태복음 6:25–34. 생명의 공급과 돌보심을 요약하고, 시편 104:29의 죽음과 마태복음 6:34의 괴로움을 함께 읽었다. ↩︎ ↩︎
Martin Luther, The Small Catechism, II, “The Creed,” First Article, explanation. Triglot Concordia (1921), F. Bente와 W. H. T. Dau 영어 번역, BookOfConcord.org 전재. 창조와 보존·공급, 공로에 앞서는 선하심, 감사·찬양·섬김의 순서를 요약했다. 해당 본문. ↩︎